<나를 찾아줘> 이영애

지금도 강원도 해변으로 가면 매번 여기저기 아파트 창문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봄날은 간다>(2001)의 은수(이영애)가 상우(유지태)를 배웅하던, 창가에 아무렇지 않게 늘어진 그 리얼하고도 찬란한 사랑의 순간, 그때의 이영애의 얼굴을 발견할까 싶은 신기루 같은 바람에. 한국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부각과 필요성을 인지하는 지금에 <친절한 금자씨>(2005)의 금자(이영애)를 매번 언급하면서 배우로서 이영애가 가진 또 다른 에너지를 불러오고 가늠해본다. <친절한 금자씨> 이후 14년. 스크린 배우로 공백의 시간을 갖는 동안, 이영애는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로, 또 JTBC <전체관람가> 중 단편 프로젝트 <아랫집>으로, 스페셜 다큐멘터리 <이영애의 만찬>으로 그렇게 간간이 소식을 알려왔다. 하지만 스크린을 꽉 채우던, 배우 이영애가 관객에게 주었던 포만감은 늘 고팠다. <나를 찾아줘>는 그렇게, 긴 휴지기를 가진 이영애가 40대의 끝자락에 다시 선택한 스크린의 또 다른 공기다. 20대 데뷔 시절, 화장품 CF가 만들어준 ‘산소 같은 여자’의 말갛기만 한 공기를 다수의 도전적인 선택을 통해 과감히 벗어던지고, 탁하고 거친 세상의 공기 안에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던 배우. 드라마 <대장금>의 전세계적인 성과로 가장 환호를 받을 순간, 그 환호를 등지고 가정이라는 선택지로 걸어간 것도, 결국 가장 ‘이영애다운’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돌아보면 선택의 지점 어느 하나 파격적이고 용감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재능과 끈기를 가진 배우의 귀환은 그저 반갑다는 감정 그 이상의 중요성을 가진다.

<나를 찾아줘>에서 이영애는 6년 전 아이를 잃어버린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실종된 아이가 발견되었다는 낯선 섬으로 가 끝까지 분투하는 엄마 정연을 연기한다. 개봉을 앞두고 쏟아지는 기사 타이틀의 상당 수가 ‘여전한 미모’, ‘여전히 동안’이라는 수식 앞에서, 여성, 배우, 스타라는 외적 조건에도 그 역시 노화하는 한 사람일 때, 그를 향한 수식들은 부당한 짐일지도 모른다. 그 수식을 거부도 인정도 하지 않은 채 지금 이영애는 헝클어진 머리와 거친 피부, 애타는 눈빛의 정연의 모습을 대중의 눈앞까지 끌고와 배우로서 자신이 견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 보여주려 한다. 이영애 배우가 자리하는 순간 촬영장의 ‘공기가 바뀐다’라는 현장의 말이 실감날 정도로, 커버 촬영 현장에 강렬한 아우라를 심어준 압도적인 만남. 기자 역시 <친절한 금자씨>로 만난 이후 14년 만의 인터뷰를 전한다.

 

 

-영화로는 <친절한 금자씨> 이후 14년 만이다. 왜 하지 않았나와 더불어 왜 복귀하지 ‘못했나’도 질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가족이지. 가족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지금도 저녁 시간이라 곧 가야 한다. 늦게 결혼하고 쌍둥이 낳고 시간이 그렇게 갔는지 몰랐다. 20~30대는 나름 열심히 했다. <대장금> <친절한 금자씨>로 사랑받고 나니 뭘 더 바라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 더더 좋은 걸 찾다보면 내 옆에 가족은 없겠구나, 욕심내지 말자 했다. 지금은 내게 주어지는 작품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감사하다. 지금부터 배우로, 엄마로, 아내로, 삼박자의 균형을 잘 맞춰가고 싶다.

-그간 제안이 많았을 텐데 신인감독의 작품을 선택했다. 김승우 감독님에게 들으니, 대본 보고 울었다며 덥석 하겠다기에 본인도 얼떨떨했다고 하더라.

=탄탄한 연극 한편을 본 것 같았다. 대본이 너무 좋아 신랑에게도 보여줬는데 몰입감이 뛰어나다고 하더라. 영화의 모든 인물이 주인공이라 할 만큼 캐릭터가 진중하고 좋더라. 감독님이 10년 넘게 준비한 거니 빈틈없이 쌓여간 것 같고, 그런 완성도에 가장 크게 마음이 움직였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모성’을 탐구했고, 자연인으로도 엄마의 역할이라면 차기작은 오히려 거기서 벗어나려는 마음도 있었을 텐데, <나를 찾아줘>의 정연은 엄마 역에 정면 승부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가 상상이 됐다. 예전에는 TV에서 아픈 아이를 보면 도와주자는 마음이었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는 눈뜨고 못 보겠더라. 지리멸렬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지금 현실과도 맞고. 요즘 트렌디한 소재에서도 비껴나 있는 것 같아서 이 영화가 더 와닿았다.

-재능과 노하우, 그리고 스타성을 갖춘 배우의 공백은 영화계와 관객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론 영화계 밖에서 자신을 점검하는 시간도 됐을 것 같다.

=그동안 관객의 입장에서 작품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간의 휴지기가 후퇴가 아닌 오히려 자양분이 되고 메리트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아이를 키워보니 내가 이것도 해냈는데 뭔들 못할까 그런 자신감이 생긴다. (웃음) 다시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배우라는 직업이 너무 감사하고 또 좋은 직업이지 싶다.

-지난 시간 동안 출연한 작품들 하나하나가 그사이 레전드가 됐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라면 먹고 갈래요?’, ‘너나 잘하세요’ 등이 갑자기 나오거나 JTBC 예능 프로그램 <#방구석 1열>에 소개되면 그런 프로그램들을 되짚어보곤 한다. (웃음) 더 많은 작품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까지는 아니고 아쉬움도 생기지만, 지금 더 열심히 하려 한다.

-<친절한 금자씨>는 개봉 당시보다 현재 페미니즘의 필요성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무게와 필요성이 더해지기도 했다.

=<씨네21>에서 ‘한국영화 최고의 여성 캐릭터’를 선정할 때 <마더>(2009)의 김혜자 선생님과 공동 1위 한 것을 봤다. 2005년에 인터뷰할 때 “이런 캐릭터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다”라고 말한 게 기억난다. 여성을 화두로 삼은 캐릭터가 지금까지 많지 않았고, 앞으로 더 분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올해 많은 작품이 나왔고 중요한 해라는 생각이 더해진다.

-<친절한 금자씨>가 장르 안에서 캐릭터가 강한 ‘모성’이었다면, <나를 찾아줘>의 정연은 좀더 현실적인 엄마 역할이다.

=모성이라는 키워드를 나눠 갖지만 <나를 찾아줘>는 땅에 착 붙어가는 현실이다. 현실의 드라마를 스릴러라는 장르를 더해 스피디하게 전개하는 것뿐이지 기본적으로는 현실의 드라마고, 그런 휴머니티가 있어서 이 영화가 좋았다. 정연 캐릭터 역시 주변에 있을 법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설득이 되더라.

-오랜만의 영화 촬영 현장인데, 조화성 미술감독, 조상경 의상감독, 송종희 분장 감독, 이지수 음악감독 등 <친절한 금자씨>의 주요 스탭들이 이영애를 구심점으로 모여 낯설지 않았을 것 같다.

=송종희 실장님이 전 스탭의 맏언니 역할을 해주셨다. 오랜만에 계모임한거다. (웃음) 이번에 작업하면서 장인의 퀄리티라는 게 한끗 차이구나라는걸 느꼈다. 옷도 그냥 평범하게 입은 것 같고, 머리도 그냥 부스스한 머리, 미술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세팅인데 그 사소한 차이가 리얼함을 살리더라. 모두에게 너무 감사하다.

-‘이영애’라는 이름으로 오롯이 각인되던 때를 지나, 이제 ‘이영애’ 하면 ‘쌍둥이’, ‘남편’ 이런 키워드들이 따라붙고 대중도 그걸 궁금해한다.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어떤 배우는 사생활을 노출하지 않는 원칙을 세우는데 그것도 존중한다. 나는 그냥 물 흘러가듯 즐기며 살고 싶다. 딸이 TV에 나오는 걸 좋아한다. 조금 나오면 왜 자기만 조금 나왔냐고 뭐라 한다. (웃음) 작품할 때도 신랑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이들도 내가 늦게 들어가니 촬영한다는 걸 인지하고 아빠가 돌봐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스탭들에게 커피도 사주고 한우도 사줬다. 인터뷰할 때 이런 이야기를 해야 다음 작품에서도 해주지. (웃음)

-어린 시절 모습은 딸과 비슷했나. (웃음)

=나도 그런 관심 받는 걸 즐겼다. 사실 아이들과 같이 나오는 프로그램 제의도 와서 해볼 생각이었다. 바빠서 촬영할 시간도 없는데 찍으러 와주고 출연료도 받고, 가족에게 추억도 만들고 좋지…. 그런데 신랑이 그것만은… 좀… 이라고 해서. (웃음)

-톱스타라는 점에서 사생활 노출뿐 아니라 선택의 지점마다 뭔가 거대한 계획이 있겠다는 짐작을 하기도 한다.

=부정적인 의견도 많았다. 댓글 보면 느낀다. 그런데 그걸 다 받아들이면 아무것도 못한다. 즐기면서 하고 싶다. 이런 것도 인기가 떨어지면 못하니까. 굵고 짧게 말고 중간 정도로 가늘고 오래 가고 싶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아니라 이제 필모그래피가 쌓이고, 그 안에서 이영애의 선택을 믿고 기다려주는 대중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돌아보면 나이대별로 내 선택도 달랐다. 20대 때는 결혼 생각이 없었고 재밌는 역할은 다 덤볐다. ‘산소 같은 여자’라는 CF 스타의 이미지에 멜로나 하이틴물이 들어올 땐 ‘그런 역할만 하라고?’ 하며 새로운 역할, 내 안의 다른 걸 찾아다녔다. <내가 사는 이유>의 작부 역할을 하면서도, 어디서 내가 그렇게 속을 다 내놓고 소리지르는 역할을 하겠나 하는 마음에 열심히 했다. 잠도 안 자고 일년에 3~4편씩 하니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냐는 소리도 들었다. 그때 생각했다. 뿌리가 깊어서 공백기가 있어도 사람들이 찾을 수 있게 하자. 그 깊은 뿌리를 찾기 위해 나 나름의 성장통을 겪으며 해오다 더 나이가 들어 <대장금>이나 <친절한 금자씨>를 만난 거다. 배우로 성장속도는 느렸어도 이후에 힘을 가지고 갈 수 있었던 건 20대 때 드라마와 영화로 그런 것들을 쌓아갔고, 대중이 그 모습을 좋아해준 게 아닐까 싶다.

-그사이 관객의 연령층도 달라지고, 성향도 변화가 있을 거다. 각오가 궁금하다.

=다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주름이 더 생기고 나이가 들었다는 게 여성이자 배우로 어려운 점도 있지만, 배우 입장에서는 큰 선물이지 않을까. 나를 필요로 하는 많은 작품들, 그런 선물들이 더 많이 들어왔으면 한다. 40대, 50대에도 여배우가 얼마든지 주류영화에서 활약할 수 있다는 것을, 다양한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

[출처]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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