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끝나지 않은 만남 / 박정현, 가수

 


 

 

대규모 라이브 콘서트를 무대에 올리는 데는 구석구석 세심한 노력이 들어간다. 무대의 막이 오르는 순간부터 마지막 음이 울려 퍼지는 순간까지, 가수와 무대 스태프, 음향팀과 조명팀 모두 긴장을 늦추지 않고 한 몸이 되어 움직인다. 하지만 같은 큐 사인에 맞춰 같은 노래를 부르고, 심지어는 노래 사이의 멘트까지 정해 놓아도 무대는 매번 완전히 달라진다. 기술적인 문제나 연주 실수가 나오기도 하고, 나의 목 상태도 그때그때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는 관객이다. 눈부신 조명 아래 요란하게 울려 대는 음악도 들어주는 이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처음 가수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20년 후 내가 무대에 서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특히 일이 잘 안 풀려 괴로울 때면 치기 어린 마음에 언젠가는 무대가 지긋지긋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같은 조명 아래 같은 낯선 관객 앞에서 같은 노래를 수백 번씩 부르다 보면 반복되는 삶이 지겨워질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예측은 빗나가고 말았다. 비슷한 무대에서 같은 노래를 불러도 객석이 같은 날은 없었던 것이다. 공연은 그 자체로 하나의 만남이다. 이는 가수가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해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객석을 채우는 이들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 만남이야말로 무대가 갖는 매력의 비밀이고 나를 끊임없이 무대로 돌아오게 만드는 힘이다.

단독 콘서트를 열 때면 모든 무대를 빠짐없이 보러 오는 오랜 팬들도 있다. 더없이 고마운 일이다. 시간이 맞으면 몇 번씩 와주는 가족과 친구들도 있다. 늘 바뀌는 객석에도 낯익은 얼굴들이 더러 섞여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도 객석의 구성이 같은 날은 없다. 객석은 우연히 한곳에 모인 낯선 이들의 공간이다. 하지만 막이 오르면 객석에서는 늘 마법 같은 일이 생긴다. 무대 한가운데서 나는 그 낯선 이들이 한마음으로 거듭나는 장면을 목격한다. 하나가 된 관객들이 나에게 보내는 에너지는 매번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다. 오늘의 관객이 내뿜는 에너지는 어제 같은 자리에서 느낀 에너지와 다르다. 내 노래도 그날 객석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게 그날의 공연은 재현할 수 없는 특별한 무대가 된다.

이 만남의 매력은 철저한 우연의 연속으로 이뤄진다. 공연 당일의 계절과 요일은 물론이고, 누군가와 동행한 사람, 혼자 온 사람, 날씨와 공연장의 온도까지 모든 게 우연히 얽혀 그날의 특별한 만남을 만들어 낸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아주 작은 요소 하나까지도 내가 어떤 관객을 만나게 될지에 영향을 미친다. 조용히 집중하는 객석을 만나는 날에는 내 노래에도 섬세한 뉘앙스가 담긴다. 숨소리 하나, 가사 한 마디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멜로디는 깔끔하게 원곡에 충실한 느낌으로 부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야외 페스티벌 같은 곳에서 노래를 따라 부르고 환호성을 지르는 관객을 만나면 그들과 즐겁게 호흡하는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생긴다. 이처럼 관객의 에너지에 온전히 빠져든 내가 어떤 공연을 펼치게 될지는 나 자신도 알 수 없다. 거부할 수 없는 무대의 마력이다.

관객이 달라지면 노래 부를 때 떠올리는 생각도 달라지고, 노래에도 미묘한 차이가 생긴다. ‘P.S. I Love You’를 부를 때 객석에 커플이 많으면, 나는 남편을 떠올리기도 하고 어린 시절 첫사랑을 떠올리기도 한다. 노랫말 속 그대는 관객들이 되는 경우가 많다. 관객을 향한 러브송인 셈이다. 가장 최근에는 객석 7번째 줄에 앉은 10살 남짓한 소녀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며 이 노래를 불렀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내 노래를 들어본 적도 없을 텐데 노래가 끝날 때마다 누구보다 환한 얼굴로 손을 높이 들고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줬다. 공연 초반, 우리는 손잡고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 그날 그 노래는 그 소녀를 위한 것이었다.

오늘의 관객이라는 특별한 인격체를 마주할 때의 즐거움은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날, 나를 무대까지 이끄는 유일한 원동력이 된다. 내 몸이 곧 악기인 만큼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일은 인생의 가장 큰 스트레스이다. 역설적이게도 그 부담감 때문에 번아웃이 올 때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기도 한다. 몸 상태가 아주 좋고 기분이 환상적인 날에도 콘서트가 완벽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관객이 모여들기도 전에 구두굽이 부러지거나, 전기가 나가거나, 음향 감독이 식중독에 걸리거나, 밴드 멤버의 항공편이 취소되거나, 내가 계단을 오르다 넘어지는 사고가 생길 수 있다. 이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무슨 기적이든 일어나 오늘 무대가 무사히 끝나기만 했으면, 하는 심정으로 무대에 오른 날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 날, 간절히 바라는 그 기적을 일으키는 것은 늘 관객이다. 내가 텅 빈 껍데기처럼 느껴지는 날에도 관객의 에너지는 마른 땅을 적시는 시원한 빗줄기처럼 나를 가득 채워준다. 그 만남의 첫 마디, “관객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는 내게 상투적인 인사말이 아니다. 세상 그 어떤 말보다도 내 진심을 담은 말이다.

 

*번역: 권채령

*사진 제공: 문화인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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