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찾아서] 겸손함과 끝없는 고민 / 박경수, 필장·무형문화재

 

 

좋은 붓에 대한 끝없는 고민과 고뇌는 붓을 처음 잡은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어떠한 붓이 진정 좋은 붓인가?’ ‘어떠한 붓을 만들어야 나와 모두가 만족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수없이 하고, 눈을 뜨자마자 그 생각에 사로잡혀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붓을 잡은 지 40여 년이 넘어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좋은 붓을 만들기 위해 수없이 고민해왔지만, 아직도 그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만일 찾는다면 그제야 붓 장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이, 고민했던 수많은 날들이 헛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고, 붓에 대해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장인의 삶에 만족이 있을까. 그래서 붓을 마지막으로 잡는그날까지 한 자루의 붓이라도더 정성을 들여 만들고, 붓 장인으로서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갖게 된 것은 스승님들의 영향이 크다. 바로 아버지와 박순 선생님이다. 어렸을 때 대나무와 붓 공예를 함께 해오시던 아버지는 하나의 작업을 하실 때마다 늘 사용자를 생각하며 정성을 들이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더 좋은 붓을 만들려면 더 좋은 공예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하시며 집안 어르신인 광주의 박순 선생님을 소개해주셨다. 광주에서도 붓 한 자루라도 소중히 여기고 늘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붓 공예 기술을 배웠다.

 

스승님과 선배들의 가르침 중 하나는 좋은 붓은 기본적으로 좋은 재료가 필요하며 추운 지방의 동물 털이 두껍고 탄력이 있어 최고로 좋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가르침이 머릿속에 맴돌던 어느 날, 가장 추운 지역 중 하나인 강원도가 떠올랐다. 1985년 결혼 후, 강원도로 가야겠다는 일념으로 춘천에 정착했다. 아버지 밑에서 붓을 배우던 넷째 동생도 이곳으로 오게 했고, 온 가족이 함께 붓을 만들기 시작했다. ‘좋은 붓을 위해 터전을 옮긴 것이다.

 

아내의 도움과 응원 덕에 춘천에서 붓 공예 기술을 더욱 잘 연마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우리의 전통 붓 중 하나인 깃털 붓을 만들기도 했다. 처음에는 오래 키우던 앵무새가 죽어서 이를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 그 후, ‘왜 깃털로 만든 붓은 없을까?’라는 고민을 계속하게 되었다. 이에 가장 쉽게 재료를 구할 수 있고, 춘천과 가장 연관이 있는 닭을 이용해보기로 했다. 연구 재료로 활용할 닭털을 구하려고 닭 수백 마리를 직접 기르기도 했고, 5년여간의 연구 끝에 드디어 닭털 붓을 만들었다. 닭털 붓은 전통새로운 붓’, 그리고 좋은 붓에 대한 고민을 위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것은 전통이 아니다라고 생각한 것이 전통인 경우도 있었고, ‘이것은 새로운 것이다라고 여겨온 것이 과거 역사 속에 존재하던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붓으로 만들지 못할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이 붓으로 탄생될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고, 참으로 오묘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선조들이 먼저 뛰어난 기술로 만들어 온 것에 대한 경외감, ‘내가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라는 자만심을 가졌다는 부끄러움이 공존하면서 붓에 대해서는 더욱 겸손해질 수 있었다.

  

인생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모든 기술에는 완성형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도 그랬었지만, 그때의 결과물을 재고해보면 한없이 부끄럽다. 한때 장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을 후회한 적이 있다. 하지만 공예 기술의 결과물을 직접 눈으로 보며 비교하면서 나를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다. 환갑이 지나 다시 태어났다고 볼 수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장인을 선택한 것이 다행이고 감사하다. 흩날리고 엉켜있는 털을 붓을 위한 정돈된 털로 만들기까지는 수백 번의 손질이 필요하다. 이는 우리의 인생을 가다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나를 가다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에 오늘도 붓을 잡으며 마음을 다잡는다. 앞으로도 겸손함과 미안함, 책임감을 갖고 나아간다면 조금이나마 완성형에 다가가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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