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앤스토리] 기억의 예술관, 베를린을 추억하며 / 백종옥 미술생태연구소장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올 때면 문득 베를린이 생각난다. 우중충한 겨울 하늘, 고풍스러운 예술대학 건물, 햇빛이 드는 평온한 기숙사, 자작나무가 무성한 숲길이 떠오르는가 하면, 종종 길거리에서 사 먹던 카레소시지와 딱딱한 빵을 그리워하다가, 자주 가던 책방엔 어떤 새로운 책들이 깔렸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마음은 마실가듯 금방이라도 베를린에 가보고 싶지만 현실의 거리는 너무 멀다. 그런데 베를린을 추억할 때마다 가장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것은 내가 방문했던 특별한 장소들의 이미지이다.

 

2000년대 초에 나는 베를린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그 시절엔 공공미술에 관심이 많아 베를린 곳곳을 쏘다녔는데, 가장 많이 갔던 곳은 베벨광장이다. 베를린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문에서 동쪽으로 길게 뻗은 운터덴린덴 대로를 한참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베벨 광장이 나온다. 18세기에 조성된 유서 깊은 베벨 광장 옆엔 베를린 국립오페라 극장이, 광장 건너편엔 훔볼트 대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광장 중앙의 바닥에는 가로와 세로 각각 120센티미터의 투명 유리창이 있는데, 그 아래로 텅 빈 하얀 책장들이 있는 직방체 공간이 보인다.

 

이것은 이스라엘 출신의 예술가 미하울만(Micha Ullman)’이 제작한 <도서관>이라는 기념조형물이다. 그 자리에서 벌어진 역사적인 사건을 상기시키기 위해 1994~95년에 설치되었다(사진1). 1933510일 밤 광기 어린 나치즘을 추종하는 수천 명의 독일 대학생들은 베벨 광장에서 책들의 화형식을 거행했다. 유대인 작가와 학자, 나치에 비판적인 비유대인 저자들이 쓴 2만 권이 넘는 책들을 불태운 것이다. 그것은 600만 유대인 학살의 서막을 여는 행위였다. 소실된 책들의 부재가 깊은 공허감으로 다가오는 미하 울만의 <도서관>을 보면서 나는 비로소 높은 예술성을 지닌 기념조형물의 사회적 역할과 힘을 깨닫게 되었다.

 

베벨 광장의 지하 도서관을 보고 나서 베를린의 기념조형물들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도심에서 남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그루네발트라는 도시고속전철역에도 좋아하는 기념조형물이 있다. 전철에서 내린 다음 그루네발트역 입구 쪽으로 가면 ‘17번 선로(Gleis 17)’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을 따라 계단으로 올라가면 기차가 다니지 않는 오래된 선로와 승강장이 펼쳐진다. 선로 양쪽 승강장 바닥엔 186개의 강철판이 약 132미터 길이로 깔려 있는데, 바닥에 깔린 그 강철판들이 바로 <17번 선로>라고 불리는 기념조형물이다. 니콜라우스 히르슈, 볼프강 로르히, 안드레아 반델이 참여한 건축가 팀이 1998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강철판 가장자리엔 수송 날짜, 수송된 유대인 수, 행선지가 새겨있다(사진2).

 

이런 단순한 글자와 숫자의 의미는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킨다. 그루네발트역을 비롯해 3개의 기차역에서는 1941년부터 1945년까지 특별열차를 이용해 베를린에 사는 수많은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와 같은 죽음의 수용소로 보냈는데, 17번 선로에서도 특별 열차들이 출발했던 것이다. <17번 선로>는 기존의 승강장 풍경을 크게 변형하지 않으면서도 그루네발트역에서 일어난 역사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난 계절이 바뀔 때마다 고즈넉한 그곳을 찾았다. 강철판에 새겨진 글자와 숫자들을 보면 나치 시대의 야만적인 일상이 떠오르곤 했다.

 

이처럼 베를린의 기념조형물들 중 상당수는 역사적인 장소에 있지만 대체로 일상에서 단절된 느낌을 주지 않는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직으로 높이 솟은 기념탑 같은 형식보다는 수평적이면서 낮고 주변 환경에 밀착된 형식의 기념조형물들이 많다. 그것들은 의례를 위한 성역처럼 존재하지 않고 감동을 주는 예술작품으로 다가온다. 그만큼 도시의 풍경에 잘 스며들어 있다. 이런 방식으로 베를린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기념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베를린의 기념조형물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기념조형물은 단지 기념조형물 자체로 끝나지 않고 그것이 속한 사회를 반영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사회에서는 수직적이고 거대한 기념조형물이 주를 이루고, 게다가 관이 일방적으로 주도하여 기념조형물을 설치한다. 하지만 개방적이고 다원적인 사회라면 기념조형물의 형식도 다양하기 마련이다. 기념조형물이 제작되기 전에 공개적인 여론 수렴을 거치면서 동시에 비판과 반론이 오가는 토론 과정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또한 기념조형물을 고정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계속 연구하고 새롭게 재해석이 가능한 대상으로 본다.

 

베를린의 기념조형물이 내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은 탓에 귀국 후에도 자주 떠올랐다. 특히 한국에서 진부한 기념조형물들을 마주칠 때마다 베를린의 그 장소들이 생각났다. 내가 베를린의 기념조형물을 좋아하고 자꾸만 떠올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기념조형물과 그 주변 환경이 관조의 여백처럼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대도시들의 풍경은 너무나 번잡하고 자극적이다. 모든 것들이 빠른 속도로 성급하게 바뀐다. 이런 곳에선 개인의 삶이든 공동체의 삶이든 제대로 뒤돌아보고 성찰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의미 있는 역사와 관련된 기념조형물이 도시 안에 설치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불필요한 장식처럼 주변 풍경과 부조화를 이루기 일쑤다.

 

기념조형물은 과거를 기억하고 성찰하기 위해 필요할 뿐 아니라 조형예술품으로서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감성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기념조형물이 온전한 역할을 하려면 그것이 설치된 장소와 주변 환경이 함께 변화해야 한다. 일상과 단절되지 않으면서도 관조의 여백이 넉넉한 예술적인 풍경이 펼쳐진다면 우리의 삶과 사회도 변하지 않을까?

 

백종옥

사진1: 도서관-미하 울만(1994-95)

사진2: 17번 선로-니콜라우스 히르슈(1995-98)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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