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그 상상의 공간] 눈에 대한 몇 가지 감각 / 헤르츠티어, 사진작가

눈 소식이 있는 날 저녁엔 가급적 약속을 잡지 않는다. 싸락눈이든 진눈깨비든 함박눈이든, 희고 차가운 것이 허공에 나풀거리기라도 하면 가슴이 쿵쿵 뛴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가 창밖에 펼쳐지고 있는 그 장면을 보았다면 조바심이 난다.

연인들이 가족들이 친구들이 서로에게 만나자는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나는 정반대의 마음이 된다. 이상하게도 모두와 잠시 떨어져 있고 싶어지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그런 날 카메라와 장비를 챙겨서 길에 나가는 일이 내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 돼버렸다. 어떤 주문이나 명령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스름이 깊어졌을 즈음, 나는 집을 나서 가로등 불빛을 받아 앞서가는 내 그림자를 따라 걷는다. 보풀처럼 내리는 눈의 빛에 홀려 다른 사람의 그림자와 헷갈릴 때도 있다. 그들은 어둠 속으로 천천히 사라진다. 목적지가 있고 기다리는 이가 있는 사람들은 길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들이 떠난 뒤 이 눈이 이 밤이 다 걷힐 때까지도 내가 길에 남아 있으리란 걸 나는 경험으로 알 수 있다.

길에서 사진을 줍는다는 것은 단지 그럴듯하게 예쁜 장면을 채집하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보다는 바라보는 동안 잠시 그것의 삶과 의지와 감정을 추체험하는 행위에 더 가깝다. 요컨대 상상력이다.

뷰파인더에 들어온 눈송이 하나가 땅에 닿을 때 그것은 허밍처럼 내 귓전을 때리고, 초점을 놓친 눈송이 하나가 입술을 적실 때 나는 어릴 적 나의 겨울 보양식이었던 그것을 달게 삼킨다. 그럴 때 피사체는 고정된 형상을 벗고 다르게 인식된다. 빤한 그것이 아니라, 나였다가 너였다가 우리였다가 기억 속 그것이었다가 끝내 헛것으로 눈에 비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헛것은 규범이 없다. 헛것은 무방비하다. 헛것은 자유다.

매일 오갔던 동네 골목이 하얗게 낯설어지는 광경이 나는 반갑다. 사람들 사이에 떠 있던 어둠이 흐릿하게 지워지며 하얀 도트들로 알알이 채워지는 순간 역시 황홀하다. 김 서린 카페 유리창에 손가락 낙서를 하는 연인들,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비틀거리는 취객, 눈을 맞으며 하루 장사를 마감하는 시장 상인들, 어느 집 처마 밑에 앉아 눈 구경하는 길고양이들 모두 내게는 한겨울의 상징 같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눈을 맞는다. 말할 수 없는 것들, 다시 말해지지 않을 것들, 그만 새하얗게 덮자고 내 지붕 위로도 펄펄 눈이 내린다. 

몇 달 전 첫 사진에세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싱긋, 2018)을 출간했다. 겨울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상실감과 애도에 대해 글로 찍은 사진, 사진으로 쓴 글을 모은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상실이라는 주제에 천착해왔는데, 있던 것이 사라지고 난 뒤에 남은 자리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처음에 책의 구성을 어떻게 할까 고민이 있었는데 금방 답을 찾았다. 어느 해 눈 내리는 밤에 사진 주우러 나갔다가 마주한 장면들을 맨 앞에 배치하자 자연스럽게 길이 드러났다. 빈자리를 덮은 하얀 천처럼 지상에 새하얀 것을 날려주는 겨울의 다정하면서도 쓸쓸한 손이 고마웠다.

눈이 오면 세상은 백지가 된다.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페이지. 동시에 모든 것이 쓰일 수 있는 페이지. 누군가에겐 상실의 자리이고 누군가에겐 새로운 시작이 될 거기에서 사람들의 이야기가 눈송이처럼 사박사박 태어난다. 나는 눈 내리는 밤에 그 환한 길을 걷는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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