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꿈을 걷다 _ 함께 만들어가는 시간 / 안오준, 카레클린트(KAARE KLINT) 대표


서로 안 싸워요?” 8년간 동업을 해오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우리의 대답도 늘 정해져 있다. “셋이라 다수결로 의사결정을 해요.”, “서로를 워낙 잘 알아서 싸울 일이 없죠!”, “학창시절 공동과제 하듯 언제나 즐겁게 일합니다.” 등등. 그럴 때마다 질문자에게 늘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왔지만, 카레클린트 세 공동대표는 정말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8년째 동업을 잘 해나가고 있다.

 

우리의 첫 시작은 2005년 목조형가구학과 대학교 새내기들의 만남이었다. 20여 년을 다르게 살아오다 만났지만, 같은 전공을 배워나가며 자연스레 친해졌다. 과제도 같이하고, 미팅도 같이했다. 군대라는 잠깐의 이별의 시간을 가진 뒤, 복학생이 된 우리들은 자신감으로 다시 뭉쳤다. 가구 디자인 전공자 세 명이 모이니, 접시는 깨지지 않았지만, 펜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수백 차례의 스케치와 렌더링을 거쳐 드디어 지금의 베스트셀러 ‘001 sofa’의 도면이 나왔고, 그 도면을 들고 경기도 도처에 있는 가구 공장들을 돌아다녔다. 몇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힘겹게 우리의 디자인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공장을 찾았고, 공장이 시제품을 제작하는 사이에 우리는 창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고, 돈을 빌리러 다니기도 했다.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셋이서 서로서로 의지한 덕분이었다.

 

설렘과 두려움을 반반씩 담아낸 첫 제품 ‘001 sofa’가 드디어 양산되었고,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그야말로 초대박이 났다. 당시 1톤 탑차를 중고로 구해서 전국 배송을 직접 했는데, 고객들은 회사 대표이자 디자이너인 남자 셋이 직접 배송을 왔다며 반가워했다. 급속도로 늘어나는 주문 물량을 소화하다 보니, 고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밤 11시에 배송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기적적이다. 무모하기도 했지만, 셋이 모였기에 겁을 덜 내고 즐겁게 일했던 게 성공의 비결이 된 것이다.

 

그러나 사업의 길이 쉽지만은 않았다. 위기는 언제나 대비할 여유를 주지 않고 냉정하게 찾아왔다. 창업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카피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경험이 없던 우리는 당황스러웠다. 너무 화가 나기도 했지만, 카피 브랜드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보다 내실을 더 다지고 신제품 개발에 더 몰두하는 길을 선택했다. 매출이 정체되면, 우리는 우리의 선택을 믿고, 품질을 더욱 높이고 새로운 디자인에 더 매진하는 데 힘을 썼다.

결론적으로 카레클린트 가구가 진짜임을 인정받는 데는 그리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후로 회사는 점점 성장했지만, 우리는 또 다른 위기에 봉착했다. 100% 원목을, 100% 수제작으로 생산하는 방식은 높은 원가를 요구했고, 결국 자체 공장을 지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모두가 값싼 인건비를 찾아 해외로 눈을 돌릴 때, 우리는 오히려 국내 자체 생산에 더 집착한 것이다. 숙련된 목공 장인들에 의해 꼼꼼하게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카레클린트의 아이덴티티이자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2018년은 카레클린트의 미래의 변곡점이 되어준 해로, 그 어느 때보다 세 대표가 똘똘 뭉쳐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다. 실제로 서로 누가 더 열심히 일하나 경쟁하기도 한다. 마치 대학생 때처럼.

2010년 도원결의로 창업해서 연 매출 100억대의 지금에 이르기까지 경영을 직접 해보니 위기는 실시간이며 기회는 이따금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셋이 함께한 덕분에 위기는 3분의 1이 되며, 기회는 3배로 불릴 수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훗날 카레클린트가 모두에게 인정받는 좋은 가구의 상징적인 브랜드가 되고, 동시에 성공적인 동업의 상징으로 비춰지기 위해 오늘도 우리들의 회의는 끝나지 않는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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