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빛깔 속에 숨겨진 긍정의 맛

화과자의 첫맛은 눈으로, 끝맛은 혀로 즐긴다’는 말이 있다.


아시아디저트 연구가 서지현의 일상에 비춰보면 이 문장은 ‘삶의 첫맛은 눈으로, 끝맛은 마음으로 즐긴다’로 대체해도 좋을 것 같다.

 

 

 

‘이렇게 앙증맞은 화과자를 매일 만드는 사람은 하루하루가 얼마나

즐거울까?’

하하 호호 웃다보니 어느덧 모양을 갖춰가는 귀여운 토끼 한 마리를 보고 스친 생각이다. 서울 연희동에 위치한 디저트 공방 ‘갸또디솔레’에서 오늘 만들어본 메뉴는 토끼 모양의 화과자. 방울토마토 크기의 앙금을 넣은 쌀반죽을 손바닥으로 굴리는 첫 단계부터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더니 솜씨가 서툴러 모양이 찌그러져도 마냥 재밌기만 했다.

 

‘국내에서 제일 예쁜 화과자’를 만든다고 평가 받는 화과자 강사 서지현(34)의 말투와 표정에도 항상 생기가 넘쳐흐른다.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화과자를 함께 만들며 수강생들과 즐겁게 웃는 시간 속에서 삶의 활력을 얻는 덕분이다. 일본 전통 간식인 화과자, 한국의 떡, 중국과 일본에서도 즐겨 먹는 양갱 등 아시아디저트 연구가로 활동 중인 그녀의 달력은 요즘 원데이클래스, 정규반, 취미반 수업 일정으로 빽빽이 채워져 있다.

 

흔히 ‘만주’로 불리는 화과자는 본래 화려한 모양이 특징이다. 그중 에서도 서지현표 화과자는 한층 더 세련되고 정교한 비주얼로 인기가 높다. 한 번 보면 눈을 떼기 어려운 비주얼은 색감에서 나온다. 은은한 파스텔 톤의 색깔은 다소 촌스러운 디저트로 비춰졌던 화과자의 이미지를 고급스럽게 바꿔준다. 쌀반죽에 감도는 고운 빛깔은 그녀가 일본에서 화과자 명인에게 요리법을 전수받을 때부터 자신만의 조색법을 소신껏 연구해온 결과물이다.

 

“동백꽃 모양의 화과자를 배울 때 선생님께 연한 하늘색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원칙이 아니라며 그대로 붉은색으로 수업을 진행하셨지만 따로 혼자 연습해서 하늘색 꽃을 완성하고는 매우 기뻐했죠.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색감을 내고 싶었거든요. 겉모양은 앙금의 달콤한 맛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이기에 제가 매우 중시하고 있어요.”

  

아무리 좋은 맛을 품고 있다 해도 겉으로 표현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가 수업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일과는 SNS 업로드다. 그날 하루 수업 시간에 완성한 화과자와 가장 잘 어울리는 그릇을 골라 정갈히 담고 스마트폰이 아닌 DSLR로 여러 각도에서 찍은 다음 제일 잘나온 컷을 선별해 보정작업까지 꼼꼼히 마무리해 SNS에 게시하는 작업에 그녀는 꽤 공을 들인다.

 

지금이야 갸또디솔레가 정식 화과자자격증 발급기관으로 선정돼 지방은 물론, 해외에서도 배우러 올 정도로 인기지만 5년 전만 해도 찾는 이 없는 쓸쓸한 작업실이었다. 빵이나 쿠키와 달리 그녀가 처음 시작했던 앙금플라워는 국내에선 생소한 분야여서 수강생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지리적 접근성이 부족한가 싶어 성북동에서 역삼동으로 공방을 옮겨도 봤지만 한 달 수강생이 한 명밖에 되지 않는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공방으로 쓰던 원룸의 월세를 못내는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원하는 일을 마음껏 즐기며 하게 될 날이 올 거라는 희망만큼은 놓지 않은 그녀였다.

 

“그때도 SNS에 제가 만든 앙금플라워 사진을 올렸는데 약간 연출을 했어요. 엄마 손을 찍어 수강생인 척 글을 올리고, 건물 경비아저씨까지 섭외해 오늘은 남자 분이 배우러 오셨다고 적었죠. 봐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스스로 성공한 듯이 행동하다 보면 언젠가 꼭 현실이 될 거라 믿었어요.”

 

그녀의 바람과 달리 지지부진한 상태는 1년 가까이 계속됐다. 결국 좀 더 저렴한 원룸을 찾아 영등포로 또 한 번 공방을 옮긴 그녀는 을씨년스러운 골목에 자리한 6평짜리 원룸에서 외로운 시간을 견뎌냈다. 창밖에서 전철 지나가는 소리만 들려와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 만큼 막막한 시기였지만 어지러운 현실을 긍정의 말들로 단정히 포장했다.

 

“디저트가 요즘 뜨는 분야라 수강생이 늘고 있어요. 다 잘 될 거예요.”

공방 사정을 걱정하는 엄마를 안심시키느라 했던 말이 마법의 주문이라도 됐던 걸까? 새로운 대안으로 준비한 메뉴인 떡과 화과자가 예쁜 모양과 간편한 레시피로 SNS에서 조금씩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동안 입버릇처럼 이야기한 ‘좋은 날’이 비로소 현실로 다가왔다.

 

“화과자 수업을 개설하고 나서 수강생이 눈에 띄게 늘었어요. 메뉴 덕인 줄 알았는데 성북동에 첫 공방을 열었을 때부터 제 SNS를 봐오다가 성실함에 반해 배우고 싶어졌다는 분들이 많은 거예요. 성공한 모습을 상상하며 꿋꿋이 견디지 않았다면 제 꾸준한 노력이 빛을 발하지 못했을 거예요.”

 

긍정에너지가 가져다준 ‘좋은 날’

 

그녀가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좋은 결과로 이끌어주었던 동력은 항상 긍정적인 자세로 현실을 낙관하는 습관이다. 미국 유학시절, 한 학기 등록금이 상상을 초월하는 사립 고등학교에 다닐 정도로 부유했던 집안이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어려워져 생활비와 집세를 스스로 벌어야 했을 때도 그녀는 우울감이 밖으로 드러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일식집 서빙 알바조차 다양한 사람을 만나볼 기회라 여기며 늘 웃는 얼굴로 손님을 응대했다. 그 덕에 팁을 두둑이 받아 생활비 걱정을 덜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해 국내 유명 어학원에서 토익강사로 활동하던 시기에는 성대 결절을 앓으면서도 학생들 앞에서만큼은 쾌활한 모습을 보이는 스타 강사로 큰 사랑을 받았다.

 

지금도 그녀는 공방에서 인기만점인 선생님이다. 손재주가 없어 쭈뼛쭈뼛 거리는 수강생들에게 칭찬을 쏟으며 자신감을 불어넣어준다.

“정말 예쁘게 만드셨어요! 색깔이 굉장히 화사한데요?” 같은 긍정의 말을 아끼지 않는 그녀에게 수강생들은 평생 받을 칭찬을 다 받은 것 같다며 고마워한다.

 

“지금도 공방 운영에 대한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거워요. 그러나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면 그 에너지가 제 현실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저는 사람들이 제가 갖고 있는 지식이나 기술보다 에너지를 얻어 가면 제일 좋겠어요.”

 

녹록찮으나 소중한 현실을 밝은 표정과 말로 품으려는 자세가 빛 고운 반죽으로 앙금을 감싸는 작업 과정과 참 많이 닮았다. ‘그릇이 아름다워야 안에 담긴 맛의 가치가 더 높아진다’는 신조를 가진 그녀는 최근 화과자 만드는 노하우를 빠짐없이 담아 책으로 펴냈다. ‘화과자를 배우고 싶은데 휠체어에 의지하는 신세라 갈 수가 없다’는 사연의 메일을 받고 그와 같은 분들이 집에서라도 꼭 만들어 봤으면 싶은 바람으로 레시피를 엮은 책이다. 누군가의 침울했던 마음이 화과자로 인해 조금은 환해지기를 그녀는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일까? 웃으며 마무리한 토끼 모양의 화과자를 한입 베어 무니 달콤한 앙금이 혀에 부드럽게 녹아든다. 

보기도 예쁜 화과자에는 역시나 행복의 맛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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