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스토리] 작은 마을의 작은 글 / 정도선, 소리소문(小里小文) 대표

 

책방의 꿈을 처음 가졌던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입니다. 부산에서 충남 홍성의 작은 시골 마을로 이사한 후,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저에게 서점은 큰 위로가 됐어요. 외톨이가 된 것 같을 때면 서점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책을 꺼내 보곤 했습니다. 유일하게 말을 걸어주는 건 책 속 세상의 주인공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늘 시큰둥하게 쳐다보고 반가운 미소 한 번 짓지 않던 주인아저씨께서 제가 차지하던 구석 자리에 누가 봐도 나만을 위한 작은 의자를 가져다 놓으셨습니다. 어렸지만 따뜻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어요. 저는 책만이 위로를 줄 수 있다고 믿었는데 서점이라는 공간 자체도 위로를 준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서점원이라는 꿈을 갖게 되었고 대학 졸업 후 정말로 서점에 취직하게 됩니다.

서점에 있는 수많은 책들이 삶을 바꾸는 데 큰 도움이 될까요? 한 권의 책으로 인해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을 통해 바라본 책은 세상을 전복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미처 자신이 발견하지 못했던 감정을 천천히 스미게 하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책들 중에 나의 감정을 딱 표현한 것 같은 책 제목을 발견했을 때, 책방 직원의 추천사가 마치 날 향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을 때, 아마도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를 위해 이 글이 써진 것 같아 외롭지 않은 기분이 들 것입니다.

책방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필요한 감정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하고, 그 뜻밖의 발견 속에서 위로를 받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손님들이 보다 오랫동안 책방에 머물기를 희망합니다. 수백 수천 권의 책 중 자신에게 말을 거는 책을 발견하려면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자주 오거나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책이 거는 위로의 말을 듣는 시간, 서점에는 이 시간이 넘쳐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근무하는 내내 단순히 책을 판매하기보다는 위로의 공간인 서점의 매력을 알려드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책과 다시 친해지고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제가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위안을 받길 원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되던 차에 드디어 아내와 저의 책방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제주도 여행을 왔다가 우연히 발견한 비어진 옛집에 매료되었습니다. 이곳이라면 원하던 서점의 모습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70년 된 제주 전통 돌집이 갖고 있는 정서와 저희들의 이야기가 합쳐지면 바라던 위안과 따뜻함이 가득 찬 공간이 될 것 같았습니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바로 계약했고, 이름은 책방 소리소문으로 지었어요. 한자로 작은 마을의 작은 글, 중의적인 표현으로 소리 소문 없이 좋은 글들이 퍼져나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셀프 인테리어로 두 달 만에 책방을 완성했습니다. 벽과 천장을 허물거나 새로 만든 공간 없이, 아끼는 책을 뜯어 벽지로 발랐고요. 낡은 장판을 걷어낸 시멘트 바닥에는 30년 전 바닥 공사 당시 남은 고양이 발자국이 있었습니다. 또 겹겹이 발라진 벽지를 떼어 내자 1976년 신문이 드러났어요. 한때 이 집에 머무른 존재들의 흔적을 보고 있으니 시간 여행을 가는 듯했습니다. 클린하우스에서 주운 자개 밥상에 다리를 달아 만든 테이블, 중고 시장에서 무료 나눔으로 받은 책장, 집주인의 창고에 방치되어 있던 궤짝까지. 이야기가 쌓인 물건 덕분에 문 연 지 8개월이 됐음에도 삶이 켜켜이 쌓인 책방 특유의 분위기가 생겨났습니다.

서점은 다른 사업들과는 달리 큰 수익을 내기 어려운 공간입니다.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 보니 현대 서점은 서점원에게 많은 걸 요구합니다. 강연도 기획해야 하고, 커피도 만들어야 하며 디자이너도 되었다가 작가도 되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정작 서점원에게 가장 중요한, 좋은 책을 가려내 진열하고 큐레이션을 하는 일에는 에너지를 쏟기 힘들게 됩니다. 저는 책에만 집중하는 서점을 운영해나가고 싶습니다. 하여 굿즈나 음료 등 책 외에는 어떤 것도 취급하지 않습니다. 모임이나 강연도 과하게 기획하지 않습니다. 서점이 책에 집중했을 때 더욱 큰 가능성이 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고 싶습니다.

몇 년 후, 이러한 노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저희 역시 재정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고, 많은 좌절 앞에 무너질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러한 책과 서점에 대한 소신을 갖지 않고 서점을 운영하는 것이야말로 스스로 어려움 앞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책방의 미래는 이 서점을 위로의 공간,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가득한 공간,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세상을 바꿀 힘을 기르는 공간이라 믿는 순간 시작될 것입니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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