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人터뷰] 작사, 낭만을 짓다 / 작사가 서지음

음악은 창작자의 손을 떠나 세상에 나가는 순간,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뿌리를 내린다. 김춘수 시인의 처럼 타인에 의해 인식되고 명명됨으로써. 문화산업으로서의 대중음악 역시 창작자의 발화(發話) 발화(發花)하는 치열한 과정을 면면히 보여준다. 3분 남짓의 이야기 시간은 서술 시간과의 간극을 좁혀가며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고 감각을 일깨운다. 이는 금세 생명력을 잃고 사라지기도 하고, 시절을 건너 시대를 뛰어넘기도 한다.

이러한 대중음악, 특히 뜨거운 K-pop 시장에서 자신만의 화법으로 곡에 숨결을 불어넣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작사가 서지음(서정화·34)이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2012년 하동균의 가슴 한쪽으로 작사의 문을 열고, 소녀시대 태티서의 Twinkle’, f(x)‘Electric Shock’, EXO으르렁’, 오마이걸의 비밀정원’, 레드벨벳의 ‘Dumb Dumb’, 윤하의 ‘26’ 170 곡에 노랫말을 붙여왔다. 2019 가온차트 올해의 작사가을 수상하면서 더 낭만적으로 살고 낭만적인 가사를 쓰고 낭만적으로 음악을 하고 싶다고 한 그녀는 최근 <낭만이 나를 죽일 거예요>라는 자신의 저서에 낭만이 가사를, 가사가 낭만을 짓는 모습을 담아냈다. 그 마음속 행복한 소란을 듣기 위해 서울 모처에 있는 그녀의 작업실을 찾았다. 공간의 이름은 지음악단.

비워야 내 안에 있는 생각과 글을 다시 채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책을 내게 됐어요. 가사를 꺼내는 일과는 달리 많이 머뭇거리다가 한번 해보자하고 용기를 냈죠. 그동안 써왔던 가사가 3분의 1, 나머지는 짧은 글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제 생각의 조각들을 다 모은 책이죠. 과거에 비해 작사를 하면서 글이 더 친절해졌는데, 글 쓰는 스타일이나 표현이 매번 변하더라고요. 예전에는 많이 자르고 정지했다면 지금은 구어체처럼 풀어내고 있죠.”

어쩌면 그녀에게 있어서 작사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손님이 아닌 어린 시절부터 늘 함께해온 오랜 친구가 아닐까. 초등학교 때부터 동시 쓰는 것을 좋아했고, 학창 시절에는 각종 백일장에서 수상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으니 글이야말로 자신을 드러내는 가장 편하고 익숙한 표현 수단일 것이다. 지음(知音)이라는 이름도 직접 지은 필명으로, 지기지우(知己之友)짓는()의 중의적 표현이다. 이러한 한자어와 한글의 조우는 음악으로 수렴된다.

어릴 때부터 글과 친해서 막연히 시인을 꿈꾸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20대가 되어서는 왠지 음악 쪽 일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작사가라는 직업을 접하고 나서는 이 일을 잘해보고 싶고, 노력하면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무슨 자신감에서인지(웃음). 저에게 글은 그냥 본능 같아요. 떠오르는 것을 안 쓰면 안 되는. 제 생각을 남기고 저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꼭 남에게 보여주는 글 아니더라도 죽을 때까지 계속 쓰지 않을까 싶어요.”

그녀는 작사를 할 때 화자와 청자, 그리고 극적 상황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가적 상상력의 기저에는 나는 누구이고(화자), 당신은 누구이며(청자),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극적 상황), 서술 시점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작사가는 가사라는 텍스트의 (시적) 화자이자 서술자이며 오로지 음악으로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작사가는 멜로디에 가사를 입히는 사람이지만, 좀 더 비유적으로는 시나리오를 다 써놓고 독백만 남겨놨을 때 바로 독백을 채워 넣는 작업이 작사라고 할 수 있어요. 모든 지문은 지워져 있는 상태에서요. 사실 대부분 처음 가사를 쓸 때 지문이 들어가는 실수를 해요. 지나치게 멋을 부려도 속 빈 강정 같은 느낌이 들죠. 이는 저도 늘 경계하는 부분이에요. 어떤 틀 안에 저를 가두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제 내면에는 상상하는 나가 참 많거든요. 가장 좋은 가사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가사라고 생각해요.”

파블로 네루다의 유명한 시구 시가 나를 찾아왔다와 같이 가사도 부지불식간에 찾아오는 찰나의 선물이다. 하나의 점이 선을 이루고 면으로 완성되는 과정은 결국 시간의 연속성이다. 그녀는 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일상에서도 늘 낚싯대 한두 개는 놓고 있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찰나에 어떤 단어가 걸려들어 어떤 새로운 가사를 만들어낼지 모르기에.

가사가 나오면 본격적으로 세팅을 하는데, 그전에 작은 입질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언제 올지 알면 참 좋을 텐데, 모든 창작자가 모를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제한적인 상황에서 글 쓰는 연습을 해서 완성에 대한 믿음은 있는 편이에요. 물리적인 환경과 시간은 한정적이라도 상상력은 무한하죠. 중요한 건 몰입이에요. 낭만을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고요. 낭만은 거창한 게 아니라 사소한 거예요. 한번은 청소 아주머니가 고된 노동을 하며 흥겹게 콧노래를 부르시는 모습을 봤는데, 너무 낭만적이었어요. 한참을 서서 듣고 있었죠.”

낭만을 쓰고 낭만을 꿈꾸게 하는 사람, 작사가. 그녀는 앞으로도 낭만적인 상태를 잃거나 잊지 않고 싶다고 했다. 그런 그녀에게 좋아하는 시를 묻자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나희덕 시인의 , 라는 과 손택수 시인의 폭포라고 대답하며 문학소녀처럼 수줍게 웃었다.

평소에도 여백이 많고 비어있는 공간, 즉 여지가 많은 것을 좋아하는데, 나희덕 시인의 시를 보고 놀랐어요. 손택수 시인의 폭포는 어릴 때 주택 2층에 살면서 본 풍경을 떠올리게 했죠. 벚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봄날, 바람이 불면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꽃잎이 막 들이닥치는데,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어떻게 글로 표현했을까정말 대단해요. ‘폭포라는 두 글자를 본 순간 바로 그 장면이 연상됐는데, 완전 다 끝난 느낌이었죠(웃음).”

싹싹한 지우개도 미처 못 지워낸/ 햇살에 이리저리 기울이면/ 어렴풋이 보이는 듯도 한 그 미세한 요철들을/ 누군가는 읽어주지 않을까.’* 문득 그녀의 문장들을 따라 걷다 보니 앞으로 그녀만의 공(), ()는 어떻게 비워지고 또 채워질까 궁금해졌다. 그 행간을 유영하는 시정(詩情)과 누군가의 감상도. 작사든 작곡이든, 또 다른 장르의 글쓰기든 자유롭게 창작을 하며 생각의 가지들을 뻗어나갈 그녀에게는 매일이, 매 순간이 첫 문장이었다. 

. 김신영 편집장

* 서지음, 여백을 읽는 사람에게,낭만이 나를 죽일 거예요, 위즈덤하우스, 2019, p.302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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