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手作] 주문 양복점의 선생들 / 박진훈, 수려비스포크 대표

나는 서촌에서 양복점을 운영한다. 가게가 자리 잡고 있는 서촌은 환쟁이, 의원, 역관 등 조선시대 중인들이 주로 거주했던 동네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갤러리, 화랑, 미술관도 많고 공예가, 예술가들이 많다. 때문에 나는 장사치이지만 선생들이 계신 우리 가게는 서울의 다른 동네보다는 서촌이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우리 가게 2층에는 여느 양복점과는 달리 공방이 있다. 매장을 운영해야 하니 1층에 있는 시간이 더 많지만, 선생님들이 작업하시는 모습을 꾸준히 볼 수 있고 서로 즉각적인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옆에서 작업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하나같이 융통성 없이 고지식하다. “왜 그렇게까지 하시나요?” “이렇게 하는 게 맞기 때문이다.” 참으로 단순하고 명료하다. 더 할 말이 없다.

몇 해 전 아무것도 모르고 처음 소공동 양복점에 들어가 대뜸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다들 손사래를 치셨다. 그때 나의 스승이신 이상칠 선생님만 차 한 잔 내어주시며 내 얘기를 들어주셨다. 물론 배울 수 있느냐는 말에는 거절하시며. 그리고 일주일쯤 지나 다시 찾아가 당장 내일부터 배우고 싶다는 말에 그제야 승낙을 해주셔서 양복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기술도 기술이지만 일을 대하는 태도에서 느낀 점이 크다. 선생님의 일은 섬세하다. 김훈 작가가 꽃이 피었다꽃은 피었다를 두고 몇 주를 고민했다고 한 그 정도는 아니다. 혹자가 마케팅을 위해 말하는 0.1mm의 오차에 목숨을 건다든지 하는 정도도 아니다. 그건 너무 과장됐지만 미묘한 차이로 꽤나 충분히, 본인이 납득될 때까지 고민하신다.

양복을 지음에 있어서 소매를 달아주는 과정은 중요하다. 이를 서너 번 떼고 달기는 부지기수. 차분히,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 사소함을 위해. 그리고 정확하다. 선생님은 가게에서 배우는 몇 해 동안 한 번도 나에게 청소나 쓰레기를 버리는 등의 요구를 하지 않으셨다. ‘너는 배우러 왔지 나를 도우러 온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듯. 오히려 내가 있음에도 허드렛일들을 본인이 하시려고 한다. 누차 이런 것은 저한테 말씀하세요라고 했지만 사제지간이지 갑을,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함께 일하고 계신 오 선생님을 처음 뵙게 된 건 일 년 반 전의 일이다. 가게 오픈 준비로 바쁠 무렵, 스승님께 연락이 왔다. 본인은 평생 양복 일을 해왔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강원도 태백에서 작업하고 있었는데 함께 일하고 싶다고 하셨다. 사실 부박하고 시커먼 속내에는 이런 계산이 있었다.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함에도 불구하고 척박하고 열악한 양복 일을 평생 해오셨다고 하니 기술력은 정말 뛰어나시겠구나.’ 예상은 적중했고, 뛰어난 솜씨로 정직하게 일을 하신다.

내가 보는 정직한 일이란 본인이 볼 수 있는 깊이에서 충분한 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 본인의 마음에 들 때까지 해야 함이다. 비록 농아시지만 눈치도 빠르셔서 몸짓 손짓 섞고 필담을 나누면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없다. 물론 이것저것 세세히 하시고 싶은 말씀이 많겠지만 그렇지 못해서 내가 여쭤보면 항상 차분히 잠깐이라도 생각하신 다음 답을 해주신다. 평소 생각나는 대로 바로 이야기했던 나는 행간, 여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이런 어르신을 처음에 저렇게 가벼운 셈으로 맞이했다니생각할수록 부끄럽다.

함께 일하는 분들 중에는 어린 선생도 있다. 2층에서 선생들께 열심히 배우고 있는 동생 지훈이는 내가 가르침을 받던 가게 말고 기술 교육기관에서 양복 일을 배우는 동기생이었다. 나보다 4살 어리지만 어머니를 일찍 여의어 빨리 어른이 되었다. 오전부터 저녁 무렵까지는 일을 배우고 저녁부터 자정까지 잠깐 눈을 붙이고 자정부터 오전까지는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원래 타인의 행위와 사건을 몇 글자로 적어놓으면 별 감흥이 없다. 신문기사나 소설 속에서 보는 사건 사고들처럼. 하지만 내가 본 지훈이의 열정과 성실함의 깊이를 알기에 나보다 선생이라고 생각한다. 대답도 잘 안 하고 숫기 없이 싸가지도 없긴 하지만.

내가 보는 선생들은 담백하다. 성과에 으스대지 않으며 잘못된 일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지혜를 지녔다. 매사에 차분히 남들에게 폐가 되는 행동은 하지 않으며 머물렀던 자리도 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무엇보다 적당히 타협하지 않는다. 누가 알아주건 말건 본인이 납득하고 만족할 만큼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 고지식함과 답답함으로 해오는 이 일은 예술과 상업의 경계 그 어디쯤에 있는 건 아닐까. 누구나 그렇듯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어려움과 세월의 무상함으로 나의 이런 상념들이 무뎌질 때면 선생님들을 보고 다시금 날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서촌에서 답답하고 고지식하게 일하는 우리 선생님들과 함께 오랜 시간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재배포 등을 금합니다.


포스트 공유하기     
월간에세이 Essay

월간에세이 Essay

정기구독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