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무대를 평정한 ‘윙’ 스타일 비보잉_김헌우 | 한재원



 

 

화려한 조명이 켜지고 음악이 시작되면 비보이 간의 자존심을 건 맞대결이 펼쳐진다. 한 치의 실수 없이 상대를 압도하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줘야 하는 한판 승부다. 승리를 위해 비보이 세계 챔피언 김헌우는 오늘도 구슬땀을 흘린다.


비보이 김헌우(34)를 만나러 연습실로 가면서 상상해본 첫 만남은 춤 연습에 열중해 있다가 벌떡 일어나 땀에 젖은 얼굴로 수줍게 손을 내미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말쑥한 얼굴로 인사를 나눈 뒤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기대앉은 그에게서 비보이 특유의 역동적인 에너지 대신 세계 챔피언의 여유가 느껴졌다.


“작년에 대회 출전을 많이 하느라 몸의 균형이 깨진 것 같아 1,2월은 연습을 좀 자제하고 있어요. 연초에 얼마나 자기 관리를 잘하느냐에 따라 그해 컨디션이 좌지우지됩니다. 비보이에겐 체력 관리도 실력이어서 항상 제 몸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려고 해요.”


플로어네임 ‘윙(wing)’으로 활동 중인 김헌우는 길어야 3년 정도 전성기를 누리는 브레이크댄스 분야에서 무려 10년 넘게 최정상의 자리에 군림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 비보이다. 2008년, 전 세계 비보이들에게 꿈의 무대로 통하는 대회 ‘레드불비씨원’ 우승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개인 세계랭킹 1위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여태껏 그가 쌓아온 금자탑은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북돋아준다는 점에서 더욱 빛이 난다. 국내 대표 비보이팀 ‘진조크루’의 일원으로 비보이 40년 세계역사상 최초로 5대 메이저대회를 석권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는가 하면, 브레이크댄스 종주국인 미국의 ‘프리스타일 세션’ 대회에서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 비보이의 저력을 과시했다.


“탈춤, 태권도 등과 브레이크댄스를 접목시켜 출 때가 많아요. 그때마다 한국 비보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춤을 췄다는 자부심이 생겨요. 항상 대회에 나갈 때마다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겠다는 각오로 임하죠.”

 

 



영민한 댄서의 남다른 연습량


승리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다지며 싸움터로 나가는 전사처럼 그는 항상 직접 창작한 비보잉 기술들로 중무장한 채 세계적으로 쟁쟁한 댄서들과의 대결에 임한다. 특히 비보잉의 대표기술 중 하나인 ‘윈드밀’을 변형시킨 ‘윙밀’은 상대를 제압하는 그만의 필살기다. 잔뜩 웅크린 자세로 누워 등과 어깨로 360도 회전하는 윙밀은 치열한 견제가 이뤄지는 배틀에서 승부에 쐐기를 박는 고난도 기술이다. 묘기에 가까운 이 동작은 그가 연습실에서 수만 번 지구를 돌린 끝에야 완성한 비장의 무기다. 수많은 훈련으로 단련된 그의 몸은 머릿속으로 구상한 빠른 회전을 현실로 구현해냈다.


“어떻게 하면 내 춤이 차별화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뿐이었어요. 계속 머리를 쓰니까 실패한 동작에서도 아이디어를 얻게 되더라고요.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발목 잡은 자세로 도는데 아무리 연습해도 속도가 안나 좌절감이 들었거든요. 나중에는 균형까지 흐트러져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상체가 틀어졌는데 의외로 폼이 멋있는 거예요. 그 각도로 발전시킨 동작이 윙밀이죠.”


고유의 스타일이 없으면 인정받지 못하는 비보잉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독창적인 춤을 고안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무조건 화려한 동작만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장단점을 면밀히 분석해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춤을 만들어내는 영민함이 김헌우의 장점. 춤 개발뿐 아니라 연습방식도 실전에서 역량을 최대로 발휘하기 위해 자신의 컨디션을 정확히 파악해 정할 정도로 용의주도한 그는 무대에서 즉흥적인 동작을 선보이기보다 철저히 준비한 동작을 물 흐르듯 연결시키는 걸 선호한다. 그래서 그는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연습에 할애하는 편이다.


친형 김헌준이 리더를 맡고 있는 진조크루 멤버들과 본격적으로 세계대회를 준비하기 시작했던 2005년부터 그는 비보이들 사이에서 지독한 연습벌레로 통했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해 절반 가격으로 대관할 수 있는 야간 연습실에서 새벽까지 밤샘연습을 하면서도 피곤하다는 핑계로 연습을 게을리 한 적이 없다. 밤 11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매일 열 시간씩 연습한 5년 동안 쉰 날은 고작 5일뿐이었다. 세계 최고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한 순간도 잊지 않고 혹독한 연습을 거듭하는 그의 몸에선 파스 냄새가 가실 날이 없었다. 심지어 불의의 화재사고로 아버지가 운영하는 공장과 집이 모두 전소됐던 날에도 마냥 절망에 빠져있지 않고 평소처럼 연습실로 향했을 정도였다.


“불행이 닥친 상황에서도 춤을 추는 게 맞는지 엄청 혼란스러웠어요. 하지만 남들과 똑같이 노력해서는 절대 세계 최강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은 흔들리지 않았죠. 형 따라 열세 살부터 춤 출 때도 놀이터에서 흙먼지 마셔가며 열심히 연습했지만 20대가 되면서 사활을 걸고 시작한 것이 새벽연습이었거든요. 실력을 제대로 갖추는 것만이 비보이로서 살길이라 여겼습니다.”



불리한 조건을 탓하지 않고 치열하게 실력을 갈고닦아온 덕분이었을까. 2008년 레드불비씨원에서 우승컵을 거머쥐며 개인 자격으로 첫 출전한 세계대회에서 김헌우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챔피언에 올랐다. 비보이의 길로 들어선 후 그토록 간절히 염원하던 꿈을 이룬 순간이었다. 하지만 안주할 줄 모르는 그에게는 그 자리가 또 다른 꿈을 향한 도약대였다. 순위를 떠나 누구도 범접하기 힘든 실력자가 되겠다는 의지를 불태운 그는 그 후로 1년 평균 150개의 토너먼트 무대에 서며 자신을 담금질하고 있다. 간발의 차로 우승을 놓치는 적도 많지만 그는 자신의 패배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정도로 너그러운 성격이 아니다.


“2등도 나쁘진 않지만 그걸 통해 더 배워야죠. 제가 부족하다는 걸 알아야 다음 무대를 더 완벽히 준비할 수 있으니까요. 1등만 하면 자만심이 생겨 자연스레 연습에 소홀해질 테고 나태한 마음가짐으로는 절대 목표한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의 춤


실패의 경험도 발전의 기회로 삼을 줄 아는 지혜 덕분에 그는 얼마 전 개인전과 팀전 통합 100승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하며 다시 한 번 세계 비보잉의 새 역사를 썼다. 전례없는 100승을 기록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의 춤이 특별한 느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브레이크댄스는 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날개처럼 가볍고 부드러우면서도 역동적이어서 비보이들이 가장 선망하는 스타일로 자주 언급된다. 춤에서 품격이 느껴지는 김헌우에게 팬들은 ‘춤 잘 추는 비보이’보다 ‘멋있는 비보이’란 칭찬으로 화답해 주었다.


김헌우는 더 이상 오를 자리가 없는 최강자의 자리에 서 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실력을 더 쌓고 싶다고 말한다. 혼신을 다해 새벽연습에 몰두했던 과거와 지금 그의 위상은 천지차이만큼 달라졌지만 머릿속을 채우는 생각은 항상 똑같다. ‘나만이 가능한 춤은 무엇일까?’ 일상의 매 순간이 영감이 되는 그는 허리통증을 치료 중인 요즘에도 허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동작을 고민 중이다.

 

 

“중요한 건 1등이 아니에요. 진정한 실력은 내가 처한 그때그때의 상황에서 최대치로 발휘되는 능력이죠. 시간이 갈수록 건강상태, 주변 환경 등 제 상황은 끊임없이 변할 테지만 저는 그 조건 속에서 가장 멋있는 춤을 추고 싶어요.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지금도 제 동작들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춤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만의 느낌이 담기는 것뿐이죠.”


그가 도달하고 싶은 수준은 대체 어느 선일까. “세월의 흐름에 맞춰 가장 멋진 춤을 춰나가야 나 자신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그는 여전히 승리에 목마른 세계 챔피언이다.


글 한재원 기자 사진 이권호



[출처]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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