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의 지혜가 깃든 한 쌍의 탱자나무

 

경상북도 문경 대하리에는 조선시대의 명재상 황희 정승의 후손들이 터 잡고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 있다. 마을을 처음 일으킨 입향조 황시간(1588~1642)이 처음 짓고 살았던 고택은 지금도 마을 중심에 남아 있다.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63호인 장수황씨 종택이다.


이 집의 마당 한가운데에 서 있는 탱자나무가 얼마 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한 쌍의 탱자나무가 바투 서서 크고 아름다운 한 그루의 형상을 이룬 별난 나무다. 두 그루의 나무 가운데 동편에 서 있는 나무는 동쪽으로 넓게 가지를 펼쳤지만, 서쪽으로는 가지를 뻗지 않았다. 곁에 서 있는 나무의 자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본성을 최대한 양보하며 긴 시간을 보냈다.


서편에 서 있는 나무도 마찬가지다. 동쪽에 서 있는 나무를 더 돋보이게 하려고 반대편으로만 가지를 낮고 넓게 드리웠다. 두 그루가 부딪치는 부분에서는 기특하게도 서로의 몸을 피해 하늘 위로만 가지를 솟구쳐 올렸다. 극진한 배려다.


나뭇가지 끝 부분은 중뿔나게 웃자란 가지 하나 없이 상대편의 크기를 꼭 닮았다. 똑같은 크기와 생김새로 대칭형을 이룬 두 그루의 기특한 나무다. 두 그루가 한데 모여 솟아오른 나뭇가지 가장자리는 매우 자연스럽다. 영락없는 한 그루의 나무다.


서로에 대한 극진한 배려와 양보의 미덕으로 400년을 살아온 탱자나무 한 쌍은 마침내 한 그루의 커다란 나무가 되었다. 탱자나무로서는 이례적이라 할 만큼의 높이인 7미터까지 자랐다.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크고 아름다운 나무다.


상생의 지혜가 이뤄낸 결과다. 만약 그들이 홀로 우뚝 서려는 짧은 생각만 가졌다면 지금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갖출 수 없었을 것이다. 상대를 상처내며 홀로 일어서려는 욕심과 오만에 가득 찼다면 둘 다 죽음에 들고 말았으리라.


고규홍


나무칼럼리스트로 이 땅의 나무를 찾아 나무에 담긴 사람살이의 향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천리포수목원의 이사이자 인하대학교 겸임교수이기도 합니다. 《이 땅의 큰 나무》 《나무가 말하였네》 《도시의 나무 산책기》 등의 책을 냈습니다.

 

[출처]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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