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현재라는 선물 / 김하종(Vincenzo Bordo), 신부

식사하고 가세요.” 어린 시절 부모님은 지나가는 이웃들에게 항상 따뜻한 말을 건네며 안부를 묻곤 하셨다. 그런 우리 집에는 이웃들이 함께했고, 일상의 이야기꽃들로 만발했다. 부모님은 나에게 늘 귀가하기 전에 한마을에 살고 계시는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댁에 꼭 들러서 문안 인사를 드리고 오라고 당부하셨다. 이탈리아 피안사노(Piansano)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나는 부모님의 사랑 안에서 어른을 존경하는 마음, 타인에 대한 배려와 환대를 직접 보고 배우며 자랐다. 이러한 가족과 이웃의 따뜻한 소통은 인생의 첫 번째 만남이다.

어린 시절 난독증으로 고생한 나는 상대적으로 학습 속도가 느린 탓에 남들보다 배가 되는 노력 없이는 공부를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나의 개인적인 아픔은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는 계기가 되었고, 봉사의 길을 가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때부터 고아원, 독거노인, 교도소 등을 위해 봉사를 시작했고, 인간은 모두 고난과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체감하며 타인을 위한 삶을 지향하게 된다. 누군가는 왜 나만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냐며 원망과 자책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를 극복하여 다음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마치 계단을 오르내리듯, 한 단계 올라가느냐 제자리에 머물거나 내려가느냐는 개인의 의지와 선택에 달려있다. 이러한 고통과의 만남은 인생의 두 번째 만남이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과 타인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서서히 알아가면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18살이 되던 해에 예수님을 만났다. 물론 어릴 때부터 가톨릭 가정에서 성장하여 익숙하긴 했지만, 제대로 진실로만나게 된 건 그때가 처음이다. 복음에 깊이 공감할수록 아름다운 마음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졌다. 고통을 통해 마음이 정화되고 승화되는 체험을 한 덕분에 더 깊고 넓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고, 이는 인생의 세 번째 만남이 되었다.

이후 세월이 흘러 한국에 와서 경기도 성남에 터를 잡고 봉사자의 삶을 살면서 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어느 날 가족도 보호자도 없이 중풍으로 홀로 어두운 지하방에 누워있는 한 노인을 방문했는데, 그날은 내게 잊지 못할 선물을 주었다. 나는 오물과 악취로 뒤덮인 방에 들어서자마자 말문이 막혔고, 그저 힘없이 눈 감고 있는 그를 꼭 끌어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순간 내면에 새겨온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구절이 떠오르며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봉사의 삶을 통해 인간 되신 하느님을 길 위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만남의 연속으로 이뤄진 인생은 묘하게 재미있다. 아마도 네 번째 만남인 아시아와의 만남이 없었다면 한국과의 만남도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선물해준 타고르 시인의 시집을 감명 깊게 읽은 나는 간디를 비롯해 공자 등 다양한 동양의 사상가와 철학자를 찾아보았고, 이러한 아시아에 대한 호기심과 매력은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연결되었다.

다섯 번째 만남인 한국과의 만남에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주신 분은 바로 김대건 신부님이었다. 그분에 대한 존경심으로 한국에서의 삶과 봉사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준비 끝에 한국에 도착한 순간, 나는 내 나라, 내 민족이다라는 생각을 했고, 떠나는 비행기와 함께 그동안의 내 삶도 모두 떠나보냈다. 마침내 과거는 모두 갔고, 현재가 찾아왔다. 이윽고 짐을 푼 뒤 바로 장기기증에 서명을 했다. 내 정체성은 봉사자이고, 내 마지막 봉사는 장기기증이라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품어왔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이 세상을 떠날지라도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생명을 얻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여섯 번째 만남은 나에게 가장 귀하고 중요한 가난한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이들을 위해 나는 안아주고 나눠주고 의지하는 집이라는 의미의 무료 급식소인 안나의 집을 열게 되었고, 가출 청소년을 위한 쉼터도 마련했다. 과거에 비해 절대적 빈곤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상대적 빈곤으로 인한 박탈감으로 또 다른 불행에 직면해있다. 열악한 주거 문제와 인간다운 환경 조성 등, 풀어야 할 과제는 너무 많다.

이토록 연약하고 모순적인 삶이지만 이 무의미한 삶을 나는 기꺼이 사랑한다. 물론 나 역시 차마 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상황을 목도하면서 고통과 괴로움에 힘들기도 하고, 외롭고 지쳐서 나약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옆에 서 있는것만으로도 힘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접시를 닦고 신체장애자의 가정에 먹을 것을 가져다주기 위해 자전거에 당나귀처럼 짐을 가득 싣고 산동네를 오른다. 빈곤은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문제이다. 하지만 그저 사회에서 소외되고 잊힌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애쓰는 마음이 누군가에게 희망으로 닿기를 바랄 뿐이다. ‘안나의 집은 결국 밥을 주는 곳이 아닌 희망을 주는 곳이다.

문득 고향에 계신 노모와 마주 앉아 에스프레소 한 잔에 담소를 나누고 싶어진다. 온통 자연에 둘러싸인 고향의 아침 풍경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감사를 일깨워준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사랑으로 지으신 따뜻한 밥 한 끼처럼. 우리에게 현재(present)는 선물(present)이다.

*1957년 이탈리아 출생. 이탈리아 교황청 우르바노대 학사, 로마 그레고리오대 동양철학 석사. 사회복지법인 안나의집 대표(1998~). 24회 호암상 사회봉사상(2014), 12회 포니정 혁신상(2018), 국민훈장 동백장(2019) 수상.

 

사진/ 김신영 편집장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재배포 등을 금합니다.


포스트 공유하기     
월간에세이 Essay

월간에세이 Essay

정기구독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