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창] 대화가 중요해 /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

 

 

대화가 갖고 있는 힘을 새삼 느낀 건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다. 엄마와의 모든 기억 중에서 가장 선명하게 남은 것이 엄마와 나눴던 대화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여럿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우리 형제들에게 단체로 말씀을 하신 적도 있지만, 그건 그냥 하나의 장면으로 기억될 뿐 나만의 추억은 아니다.

나에게 특별한 건 엄마와 내가 눈을 맞추고 다양한 표정을 나누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일이다. 퇴근 후 한밤중에 직장 생활의 불만을 구시렁거리며 풀어놓을 때, 시답잖은 인간관계로 고민할 때, 심지어 미장원에서 한 머리가 마음에 안 들 때에도 엄마와 말을 나누며 마음속 뭔가를 쓸어냈던 것 같다. 나에게 엄마란 그런 대화들이었다.

누구와 말을 한다는 건 존재론적 혁명이다. 태초에 말이 있었다고 하지 않는가. 말을 하면 없던 것이 생기고 관계가 이어진다. 성경에서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최초로 말을 건 사건을 엄청난 일로 기록한다. 그건 하느님이 인간을 말상대로 인정한, 지극한 사랑의 표식이라는 것이다. 인간은하느님과 말을 주고받으며 그 말속에서 하느님을 확인한다. 커뮤니케이션학에서 대화란 사람을 이어주는 대인(對人) 커뮤니케이션의 일종인데, 요즘 사라져가는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이자, 시각과 청각을 모두 동원해 상호 피드백이 가능한 만큼 에너지 소모가 많은 커뮤니케이션 분야이다.

대화란 기본적으로 두 사람 사이의 공평한 소통을 뜻한다. 한 사람이 너무 많이 이야기를 하면 그건 설교 내지 훈계지 대화라고 하지 않는다. 또 서로 탁구를 치듯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해야 한다. 대화의 주제는 일정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바뀌는데, 그 변화를 조화롭게 이끌어나가는 상대가 좋은 대화 상대다. 대화는 또 서로 얼굴을 보며 관찰을 하며 반응해야 하는 매우 인간적인 소통이다. 그래서 대화를 잘 하는 커플은 소리의 톤뿐 아니라 얼굴의 주름까지 닮아 있는 경우가 많다. 

요즘 대화의 기술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굳이 얼굴을 보지 않고도 소통할 수 있는 길이 많으니 부담되는 만남 대신 간편한 문자나 이모티콘으로 대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들고 사는 요즘 사람들은 늘 채팅하고 늘 대화하지만 늘 혼자다. 하기야 정치 메시지도 트위터로 날리고, 각종 광고도 페이스북으로 하는 세상이니, 대화와 잡담과 집단토론을 모두 SNS로 해결하는 추세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결국은 얼굴을 보고 문제를 해결하거나 대화를 통해 사람과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런 진짜만남과 대화에 사람들이 점점 부담을 느끼나 보다. 외국의 각종 연구기관은 대화 상대가 없다고 느끼는 젊은이가 늘어간다거나, 온라인보다 대면접촉을 많이 한 어린이의 사회성이 뛰어난다거나, 50대 이후 깊은 대화를 일주일에 세 번 이상 하며 사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절반이라는 등의 연구 결과를 내놓는다.

그날, 그 한밤중에 엄마와 어떤 구체적인 단어들을 교환했는지 지금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그땐 뭔가 심각했던 것 같고, 엄마도 나름 심각하게 응대해 주셨지만 결국 별거 아니라는 쪽으로 가닥을 잡도록 도와주셨던 것 같다. 이상하게 볶인 머리카락에 잔뜩 신경이 곤두서있던 나에게 엄마는 삭발을 해도 괜찮다는 엄청난 말로 위로를 주셨던 것 같고,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나 자신에 대한 성찰과 상대방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하면서 대충 잊어버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 같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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