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手作] 아름답고 풍요로운 시간 / 오유리, 도예가

집에서 이것저것 요리해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언젠가 혼자 밥을 잘 챙겨 먹지 않는 친구에게 맛있는 저녁을 해주겠다며 함께 장을 보러 간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나의 열정을 고맙게 여기면서도 약간은 귀찮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왜 요리를 하지 않고 대충 밖에서 끼니를 때우는지에 대해 말해줬다. 밖에서 사 먹으면 내가 만든 것보다 훨씬 맛있는 것들을 편하게 먹을 수 있으니 요리라는 귀찮은 일을 점점 하지 않게 된다고. 하나의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그 배가 되는 시간이 들기 때문에 효율 면에서도 사 먹는 것이 더 나아 보일 수도 있겠다. 하물며 우리의 요리 실력은 아마추어인데, 유명 프렌차이즈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음식 맛에 있어서도 그리 만족도가 높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끔씩 블로그의 요리 레시피를 검색해가며 집에서 요리를 해먹는다. 요리를 위해 블로그도 검색해보고, 장도 봐오고, 먹는 시간의 배를 들여서 음식을 만든다. 이번에 만든 음식이 맛이 없었다면 다음번에는 다른 방법으로 해보고, 양념을 더 넣어 보기도 하면서 점점 발전하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아마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그 과정에 의미를 두는 것 같다. 차근차근 시간을 들여 어떤 뭔가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생기를 느끼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한다.

요리의 이런 과정은 내가 하는 공예와도 닮아 있다. 하나의 도자기 접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를 준비하는 시간, 흙을 이용해 만드는 직접 기물을 만드는 시간과 함께 내가 그것을 만들 수 있게 되기까지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체득하는 시간들이 포함된다. 그렇기 때문에 접시 하나를 위해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를 한 마디의 객관적인 시간으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어떤 사람은 하나를 위해 1시간을 썼지만, 어떤 사람은 100시간의 노력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낸 결과물일 수도 있다. 100시간은 접시를 만들기 위해 갈고닦은 노하우와 기술력이 쌓이는 시간이 포함된 것이다. 그것들이 쌓여가면서 나도 발전하고, 내 그릇들도 조금 더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변해간다.

내가 보이는 결과만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의 도예 작업을 절대 시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주로 만들고 있는 이중기는 보이지 않는 과정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이중기 기법을 통해 음식을 담는 면이 높게 올라온 접시를 만든다. 굽이 높은 제기에서부터 시작된 작업으로, 음식 담는 면을 높게 띄워 제기의 정서적인 의미는 그대로 유지하고, 형태적으로는 굽과 그릇 면이 합쳐진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현대적인 모습으로의 변용을 주고 있다. 이때 이중기 기법을 적극 활용하여 그릇의 음식 담는 면을 높게 띄운다.

이중기는 두 겹의 기벽으로 이뤄진 도자기를 말하고, 주로 두 개의 형태를 각각 만들어 포개어 접합하는 형식으로 작업한다. 쉽게 설명하면 두 개를 만들어 이어 붙어야 하나가 완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접시를 만드는 것보다 두 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점점 숙달되어 하나의 이중기를 만드는 시간은 빨라지고 있지만, 만들고 접합하는 제작 과정이 일반적인 접시보다 복잡하기 때문에 두 기물을 접합하는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하는 시간도 꽤 걸렸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고, 어느 정도 안정적인 흐름을 터득한 지금에도 접합 부위가 갈라지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완성품이 나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중기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만드는 과정에서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으로 내 도자기가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나의 도자기를 월간에세이 에세이 수필 감동글 도예 과정 오유리 실패 발전 요리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재배포 등을 금합니다.


포스트 공유하기     
월간에세이 Essay

월간에세이 Essay

정기구독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