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에세이] 새로운 경계에서 / 김영자, 화가

주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 얹으시고

들판에 바람을 풀어 주옵소서.

 

마지막 열매를 알차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녘의 빛을 주시어

무르익도록 재촉하시고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에 스미게 하소서.

 

-릴케(Rainer Maria Rilke)의 시 가을날

 

가을은 맺음과 풍요의 계절이자 상실과 조락(凋落)의 계절이다. 양가적 감정으로 이루어진 이 역설적인 계절은 찬란한 슬픔으로 더욱 아련하게 빛난다. 매년 가을이 오면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릴케의 시 가을날은 계절의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그렇다면 내 작품은 누군가에게 어떤 심상(心想)으로 가슴속 깊이 맺히게 될까. 그 감각의 세계가 문득 궁금해진다.

나에게 있어서 그림은 나만의 공간이며 시간이다. 그 안에서 숨을 고르고 가시적이거나 비가시적인 존재와 소통하며 세상을 향한 언어를 만들어왔다. 이처럼 화폭에 담긴 비현실과 현실, 상상과 실재 사이에서 창조적 열망에 사로잡힌 지 어느덧 수십 년째이다.

어린 시절 남몰래 다락방에서 그림을 그리며 혼자 행복해했던 순간부터 릴케의 시를 다시금 떠올리고 있는 오늘까지 나는 그림을 위해 아니 그림에 의해 살아왔고 살아졌다. 단 하루도 그림 속에 나를 던지지 않고서는 늘 불안하고 초조했던 시간들. 이는 어쩌면 화가로서의 숙명이 아니었을까.

결국 그림은 나를, 나는 그림을 매일 새롭게 태어나게 만들었다. 예상치 못한 병고(病苦)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을 때도 나를 살렸던 것은 바로 그림이었다. 심신의 고단함이 더해질수록 더욱 휘몰아치는 창조적 열망, 그 내면의 문장력으로 써 내려간 화폭의 세계는 특유의 몽환적인 아름다움으로 물들어갔다.

물론 이러한 비현실적 세계는 완전한 허구와는 구별된다. 내가 경험해온 모든 시간과 공간, 즉 일상의 익숙한 풍경이나 이질적(이국적)인 세계는 결국 실재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공간과 시간에서 비롯된 나의 상상과 꿈은 환상적인 시공(時空)으로 치환되고,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

창밖에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나무들의 호흡을 따라가며 잠시 눈을 지그시 감고 마음속에 내 그림들을 불러내본다. 심안(心眼)으로 바라본 그 시간의 궤적들은 앞으로 허락된 시간 동안 어떤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언어로 내 남은 꿈들을 그려낼까. 눈앞에 펼쳐진 정물과 풍경에 담긴 단어와 문장들, 그 행간에 실린 의미들은 다시 새로운 경계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존재로서 사물화될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날, 그 순간들을 기다려본다.

 

홍익대학교 서양학과 졸업. 개인전 50. 아트앤컴퍼니 기획초대전, 한일 국제회화교류전 외 다수.

 

 

한국미술협회 서양화 제2분과 위원장, 한국여류화가회 회장 역임. 한국미술협회, 홍익여성화가회 고문.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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