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꿈을 걷다] 흔들리며 피는 꽃 / 박희원, YTN 기상캐스터

누군가에게 정해진 운명이라는 게 있을까. 만일 있다면 나는 그것을 내 의지대로 바꾸며 살아가고 싶었다.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대한항공 승무원, 그리고 지금의 기상 캐스터로 일하기까지 나의 내면에는 도전의 순간과 수많은 선택지를 앞에 둔 고민, 결단의 시간들이 있었다. 돌아보면 20대의 나는 정말 겁도 없이 대범했지만 10대 때의 나는 무척 평범했다.

공부를 잘해야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공부는 잘하고 싶었고, 미래의 인재를 키우는 일은 보람 있는 일이고 평생직장으로 든든하다는 부모님의 추천대로 교대에 진학했다. 아마 나보다 먼저 교대에 들어간 언니의 영향도 있었을 테다. 연예인이나 방송인, TV에 나오는 사람이 돼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안정적인 직업인 선생님이 되고 싶은 게 당시 나의 꿈이었다.

하지만 교대에 진학하고 나서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한 해 한 해를 보내고 교생 실습을 나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함께한 시간은 즐거웠지만, 폭넓은 인간관계와 더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싹트면서 교사로서의 삶이 단조롭게 느껴졌다. 가르치는 일에 소명감을 갖고 계신 많은 선생님들과 달리 나는 그런 면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대학시절 내내 마음속에는 물음표가 새겨져 있었다. 선생(先生). 먼저 태어나 성현의 도를 전하며 학업을 가르쳐주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자질이 있을까. 정말 이대로 선생님이 되어도 되는 걸까.

졸업하고 기간제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고작 24살이었다. 이때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스무 살부터 이어진 고민을 스스로 헤쳐 나가보기로 결심했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선생님은 학생들에게도 좋은 선생이 될 수 없다는 게 내 결론이었다. 그래서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내 삶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으며 삶의 주체는 나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한 것이다. 도전은 젊은이들의 특권 아닌가.

그때쯤 대한항공 국제선 승무원 공채가 열렸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지원했고, 한 번에 합격했다. 승무원 생활은 즐거웠다. 승객을 태우고 비행기가 이륙할 때는 늘 무언가가 새롭게 시작되는 기분이었고, 착륙할 때는 다른 나라에 도착했다는 설렘도 감돌았다. 해외에서 체류하는 시간도 새롭게 안목과 견문을 넓히는 데 유익했다. 하지만 서비스직 특성상 정신적인 스트레스, 체력적인 고갈이 심해 조금씩 지쳐갔다. 서비스직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봉사정신에서 비롯되는 서비스 마인드가 가장 중요하다. 무형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일에 보람을 느끼는 동기들과 내가 다름을 느꼈다. 나는 내 일의 성과가 눈으로 보이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승무원 교육 때 발표를 도맡아 하고, 기내 방송을 하면서 잘한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걸 즐기고 좋아하는 내 적성을 발견한 것이다.

방송직을 향한 두 번째 도전은 빠른 숙고 끝에 시작됐고, 일 년간의 비행을 끝으로 나는 백수이자 기상캐스터 준비생이 됐다. 어머니는 너는 내 딸이지만, 기상캐스터는 안될 것 같아라며 만류하셨다. 하지만 일 년만 최선을 다해서 도전해보기로 다짐했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았기에 더 간절했던 것이다. 승무원을 하며 모은 돈으로 아나운서 학원을 등록하고, 아나운싱을 배우면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도 나갔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보고 싶었다. 도전의 일환으로 참가한 미스코리아대회에서 나는 강원 선으로 당선됐다. 미스코리아 합숙을 마치자마자 MBC 본사 기상캐스터 공채가 열렸고, 합숙 뒤 첫 시험에서 최종 합격했다. 정말 구름 위를 나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일 년 반 정도 MBC 기상캐스터로 일하다가 YTN에 경력직 기상캐스터로 입사했다.

올해로 벌써 기상캐스터를 칠 년째 하고 있는데, 방송은 내 천직인 것 같다. 매일 날씨를 분석해 스스로 원고를 쓰고 그래픽 의뢰를 해서 방송을 만들어 낸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정보를 주고, 방송 잘 봤다는 피드백도 받으면 무척 뿌듯하다. 매일 유형의 성과물이 영상으로 기록된다. 이처럼 온몸으로 부딪히며 일한 결과 감사하게도 내 이름을 건 첫 코너도 생겼다. ‘박희원의 날씨브리핑.’ 매일 아침 출근길에 회사에서는 나에게 일정 시간을 할애해줬다. 내 이름을 걸었던 만큼 최선을 다해 일 년간 진행했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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