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악당’이 되길 자청한 그라운드의 중재자

 

 

미국의 한 저명한 야구 저술가는 야구 규칙을 설명하는 자신의 저서에서 심판에 관한 소개글을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자, 이제 악당을 등장 시킬 차례다.’

야구 심판의 직업적 숙명에 대해 익살맞게 표현한 말이지만, 실제로도 많은 이들이 심판을 비난받아 마땅한 악당처럼 취급하는 게 사실이다. 스포츠에 승 패가 존재하는 한 심판을 악당과 동류로 취급하는 시선은 필연적이다. 어떤 판정을 내리든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심판을 향한 비난의 이유는 양 팀이 모두 똑같다. “왜 우리에게만 불리한 판정을 내리는 거야!”

한 해 프로야구 관중 800만 명 시대. 국내 최고의 대중스포츠로 자리 잡은 한국프로야구(KBO)에도 칭찬보다 비난에 익숙한 51명의 악당이 존재한다. 26년 차 현역 프로야구 심판인 최수원(53) 씨 역시 칭찬보다 비난이 더 익숙한 악당 중의 한 명이다. 한국 야구의 레전드 투수인 고(故) 최동원의 동생이기도 한 그 는 그것마저도 피할 수 없는 심판의 숙명이라며 초탈하게 웃는다.  

 

"볼 판정 하나하나가 중요하니 경기 중 어느 쪽이든 비난이 나올 수밖에 없죠. 그동안 웬만한 욕은 다 들어본 것 같아요. 어쩌다 가족이라도 구경 온 날에는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대학교 2학년인 딸 희주가 어릴 때 야구장에 놀러왔다 아빠한테 거친 욕을 쏟아내는 사람들에게 놀라 야구장엔 잘 안 오려고 할 정도였어요."

 

심판을 악당이라 비난하는 게 어디 팬들 뿐일까. 볼 판정에 불만을 가진 선수 들은 타석에서 눈을 부라리고, 흥분한 감독들은 거친 언사를 드러내며 심판을 압박한다. 심지어 불순한 의도가 개입된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팬들도 많다. 그라운드 위에서 심판은 말 그대로 절해고도의 외롭고 쓸쓸한 섬이나 마찬가지 다. 그 와중에서도 최수원 심판은 그라운드의 중재자라는 자긍심 하나로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장본인이다. “저 역시 투구 중 어깨가 탈골돼 운동을 그만뒀던 동아대학교 2학년 때까지 야구만 하던 사람이라 선수들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요. 다만 우리는 심판으로서 최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룰을 적용하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선수들과 심판은 야구라는 경기를 위해 함께 노력 하는 동업자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최수원 심판은 내년 중 2500경기 출장을 예약해둔 자타공인 KBO 최고의 베테랑이다. 정확한 볼 판정, 감정에 휘말리지 않는 냉철한 경기 운영으로 인정받는 그이지만 그라운드에서의 압박감은 초보 심판 때에 비해 지금도 큰 차이가 없다. 대부분의 프로야구 심판이 만성 스트레스로 인한 원형탈모, 소화불량 등을 혹처럼 달고 살아간다.

 

 

 

"조원들이 순번대로 주심과 각 루심을 로테이션으로 맡는데 한 경기 평균 300여 개의 투구에 볼, 스트라이크 판정을 해야 하는 주심을 맡는 날이면 압박감이 말로 못할 정도입니다. 한 경기 마치면 체중이 1~2킬로그램 빠지는 건 보통입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한여름에도 물 한잔 마음 놓고 마시지 못하는 게 프로야구 심판이다. 1994년부터 KBO 심판복을 입기 시작한 그 또한 칠팔월 불볕더위에도 꼼짝없이 서 있다 5회 종료 후 클리닝 타임이 돼서야 잠시 숨을 돌리곤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피 말리는 중압감을 인내해야 하는 직업, 그게 바로 프로야구 심판이다.

“시즌 때는 5~6명이 한 조가 되어 프로야구 일정에 맞춰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힘든 직업이에요. 제가 팀장을 맡고 있는 3조만 해도 지난주에 인천, 수원을 거쳐 오늘은 이곳 광주 챔피언스필드에서 벌어지는 두산과의 경기를 위해 내려왔는데 여기서 2연전이 끝나면 다시 수원에서 열리는 경기를 하러 올라가야 합니다. 제 집이 부산에 있는데 롯데 홈경기라도 배정돼야 가족들에게 간신히 얼굴이라도 비칠 수 있으니 가장으로서는 낙제점이라고 할 수 있죠. 1년 중 집에서 자는 날이 채 두 달이 안 되는 것 같네요.

프로야구 심판은 시즌이 끝나도 남들처럼 편하게 쉴 수가 없다. 오랫동안 경기에 나서지 않으면 볼을 판정하는 감각이 무뎌지기 때문에 비시즌에도 각 구단의 연습경기에 출전을 자청하고, 전지훈련까지 따라가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며 감각을 유지한다. 스스로 컨디션을 유지하는 자신만의 노하우도 그처럼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인 뒤에야 기대할 수 있는 일이다.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판단을 믿는 거지요. 경기가 끝나면 관련 영상을 찾아보며 계속 복기하고 공부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고요. 심판도 사람인지라 아무리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애를 써도 볼이 잘 안 보이는 날이 있어요. 그럴 때는 얼른 공을 보는 자세를 바꿔줘야 합니다. 관점을 달리해야 눈에 보이지 않던 새로운 것들을 볼 수가 있죠. 야구뿐만 아니라 사는 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끝까지 내 입장만 고집하다보면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거죠. 자기가 정말 사랑하고 애착하는 일이라면 더 유연해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아직도 그는 심판복을 입고 그라운드로 나설 때면 첫 경기에 나서던 1994년 개막전처럼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고 말한다. 홈플레이트에서 볼 판정을 하는 주심을 맡은 날은 특히 더 그렇다. 수만 명의 관중들이 질러대던 함성 소리가 일시에 멎는 순간, 모든 이의 시선이 그에게 쏠린다. 심판이 ‘플레이 볼!’을 외치 지 않으면 경기는 시작되지 않는다.

“그 순간의 희열 때문에 그라운드를 떠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관중들에게 아무리 욕을 먹어도 저의 자그마한 노력이 더해져 더 공정한 경기를 펼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이 직업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거죠. 우리나라에 딱 51명밖에 없는 직업이잖아요. 가족들에겐 면목이 없지만 한 평생 그라운드를 지켜온 심판으로서의 자부심이 큽니다. 

 

"은퇴하는 그날까지 꿋꿋이 그라운드를 지키고 싶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도,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도 바로 이곳에 있으니까요. 프로야구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어떤 역할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

 


26년을 한결같이 냉철하고 공정한 판정으로 인정받아온 그였다. 쑥스럽게도 지금은 자신을 롤 모델로 삼는 후배 심판들이 많지만 그에겐 여전히 이미 은퇴한 이규석, 허운 같은 선배 심판들에 대한 존경심이 가슴 속에 살아 숨쉰다. 팬들을 매료시키던 박력 있는 제스처, 스타 감독들의 항의에도 주눅 들지 않고 판정의 공정성을 지킨 카리스마는 꼭 닮고 싶은 부분이다.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 또한 한 해 관중 800만 명 시대를 연 국민스포츠를 위해서라면 은퇴하는 날까지 그라운드의 악당 노릇을 피하지 않을 생각이다.

“프로야구 인기에 비해 심판은 지금도 외롭고 고단한 직업입니다. 입문 당시인 1994년 첫 월급이 당시 신인선수 연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어요. 자유계약(FA)으로 수십 억 원의 연봉을 받는 선수가 즐비한 요즘에도 심판들에 대한 처우는 그리 만족스럽진 않습니다. 그래도 야구심판이 천직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야구만큼 가슴을 뛰게 하는 건 없으니까요.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두게 된 동생이 프로야구 심판이 되겠다고 했을 때 큰형 최동원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일 거야” 하고 말하며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형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동생에게도 저 푸른 그라운드가 얼마나 절실한 곳인지를…. 그 역시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매 순간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부끄럽지 않은 판정을 내리려고 노력해 온 스물여섯 해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은퇴하는 그날까지 꿋꿋이 그라운드를 지키고 싶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도,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도 바로 이곳에 있으니까요. 프로야구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어떤 역할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

그와 마주 앉은 심판실 너머로 그라운드에 나와 몸을 푸는 선수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름 한낮 햇볕에 뜨겁게 달궈진 스탠드에도 하나 둘 관중들이 들어서는 게 보였다. 잠시 후 그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악당의 등장을 염원할 것이다. 이제 다시 그가 ‘플레이 볼’을 외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두게 된 동생이 프로야구 심판이 되겠다고 했을 때 큰형 최동원은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일 거야” 하고 말하며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형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동생에게도 저 푸른 그라운드가 얼마나 절실한 곳인지를…. 그 역시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매 순간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부끄럽지 않은 판정을 내리려고 노력해 온 스물여섯 해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와 마주 앉은 심판실 너머로 그라운드에 나와 몸을 푸는 선수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름 한낮 햇볕에 뜨겁게 달궈진 스탠드에도 하나 둘 관중들이 들어서는 게 보였다. 잠시 후 그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악당의 등장을 염원할 것이다. 이제 다시 그가 ‘플레이 볼’을 외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 

 

[출처]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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