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ders] 새로운 구두, 새로운 나 / 김효진, 구두 디자이너

2014년 어느 봄날, 경복궁 앞에서 멋진 모델들이 화보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을 지휘하고 있는 사람은 세계적인 모델 타이라 뱅크스. TV의 촬영 현장이다. 나는 진행자와 경복궁을 배경으로 이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고, 내가 디자인한 구두를 신은 모델들의 화보 촬영을 보며 심사를 하고 있었다. 2003년 이 쇼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 무렵, 나는 뉴욕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못해서 집에서 이 쇼를 몇 시간씩 시청하던 백수였다. 그런 내가 이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으로 출연하다니, 꿈같은 일이었다.

나는 다니던 홍보 회사를 그만두고 20대 중반, 뉴욕으로 떠났다. 뉴욕 주립대학의 패션학교(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패션 머천다이징(Fashion Merchandising)을 전공한 뒤 여러 패션회사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러던 중 함께 유학하고 있던 룸메이트가 만든 구두를 보고 그 매력에 빠졌고, 당장 구두 만드는 수업을 듣게 되었다. 신고 싶은 컬러와 디자인의 구두를 만들기 위해 시작했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매일 그 수업만 기다렸다. 20대 후반, 드디어 내가 평생 사랑할 수 있는 일, 나의 반쪽을 만난 것 같았다.

그런데 계속 배우고 싶어도 뉴욕에는 여성 구두 공장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발 재료상에서 최신 유행의 구두 라스트(발모양의 틀)를 보게 됐고, 대부분 한국에서 수입한다는 것을 들었다. 그 길로 귀국해 구두 공장을 수소문했고, 막내 디자이너로 취직했다. 낡고 허름한 수제화 공장은 동대문에 구두를 납품하고 있었다. 월급 80만 원을 받으며 밤늦게까지 고된 일을 계속했지만, 구두 샘플이 나오는 날이면 마냥 행복했다. 오히려 내가 디자인한 구두가 잘 팔리지 않자 사장님에게 그만둔다고 했을 뿐, 매일 보람된 날이었다.

한국에서 의상학과를 다니던 시절부터 디자인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한 나는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에도 자신감이 없었다. 대단한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꿈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디자인한 구두가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하니 속상하기만 했다. 그러던 중 압구정 로데오를 걷다가 내가 디자인한 구두가 옷 가게에 진열된 것을 보았다. 동대문에서 몇 개 팔리지 않던 구두들이 모두 압구정 옷 가게에 진열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고, 사장님 허락 하에 만드는 것이 아닌 내가 만들고 싶은구두를 디자인해보고 싶었다.

이름은 나의 영어명인 지니킴(Jinny Kim)’으로 하고, 유학시절부터 외로움을 달래준 애견 첼시가 구두를 들고 있는 그림으로 로고를 만들었다. 보그나 바자에서 즐겨본 1930년대부터 1950년대의 빈티지한 디자인을 모티브로 했고, 당시 유행한 레드와 퍼플, 그린 등의 실크 소재를 사용해 할리우드 스타들이 드레스에 신으면 어울릴만한 구두를 만들었다. 그래서 지니킴 이름 밑에 할리우드라는 글자도 덧붙였다. 아무런 기대 없이 오픈했지만, 첫날 다섯 개가 팔렸고, 몇 달 후에는 월 1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슈퍼 브랜드가 되었다.

문득 로고를 보면서 정말 할리우드 스타들이 신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수 시절 즐겨본 프로그램에서 할리우드 스타들이 자주 가는 숍을 소개해준 것을 기억해서 찾아갔다. 약속도 없이 샘플과 내 브랜드가 실린 잡지를 들고 가서 한국에서 온 디자이너라고 소개했다. 마침 그들은 화려한 컬러의 실크 플랫슈즈를 맘에 들어 했고 판매를 허락했다. 이후 할리우드 스타들이 내 신발을 신고 나와 잡지에 소개되면서 유명 백화점의 바이어가 찾아왔다. 당시 내가 좋아했던 패리스 힐튼, 린지 로한 등, 패션계 스타들이 내 신발을 구입하고 신어주었다.

이러한 삶이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과분하기도 했다. 매일 꿈꾸던 것들이 이뤄지던 그 시절을 돌아보면 아주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목표를 위해 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며 편히 잠들지도 못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화려한 삶이었지만 마음은 공허했다. 그러던 2014년 말, 지니킴이 최고의 위치에 있을 때 그 소중한 브랜드를 떠나게 되었다. 파트너 회사와의 불신으로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 결혼해서 몇 년간 버지니아에 살게 되면서 그간의 삶을 돌아보았고, 앞으로는 일과 일상의 균형을 맞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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