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가 사는 법 l 배우 지창욱


ⓒ 김도원 (원더보이 스튜디오) 

“전역하고 하루도 쉬지 못했네요. 이것 보세요, 진짜 빽빽하죠?”


배우 지창욱(32)이 펼쳐 보인 다이어리에는 하나 하나 꼼꼼히 필기해놓은 언론사 인터뷰 일정들이 빼곡했다. 지난 4월 27일 강원도 철원군 백골부대에서 전역 신고식을 마친지 한 달 정도 지난 때였다. 그에겐 요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한다. 드라마 와 <수상한 파트너>를 연이어 히트시키면서 한창 인 기 가도를 달리다가 입대했던 톱스타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대중 앞에 설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서른 살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입대한 군대에서의 1년 8개월은 10년차 베테랑 배우가 가슴속에 연기에 대한 열의를 더 가득 채우는 시간이었다. 복무 기 간 동안 육군 기획의 창작 뮤지컬 <신흥무관학교> 무대에 섰던 그는 함께 공연 하는 동료 병사들로부터 큰 자극을 받았다고 소회를 전했다. 군사 훈련과 병행 해야 하는 쉽지 않은 조건에서도 지친 기색 없이 작품 준비에 임하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던지 그동안 쉼 없이 작품 활동을 해오느라 조금 지쳐 있던 그도 다시금 연기에 대한 열정이 뜨겁게 되살아났다. 군 생활은 배우로서 매너리즘 에 빠지지 않도록 해준 뜻 깊은 시간으로 남았지만 그에게도 군대가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졌던 순간이 없지 않았다.


“이름이 부각되는 연예인의 삶에 익숙해져 있다가 훈련병으로 불리니 존재감이 없어지는 것 같아 처음엔 우울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병사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생활이 즐거워졌고, 개인정비시간에 독서할 마음의 여유 도 생겼죠. 《샘터》도 행정반 사무실에서 종종 읽었는데 올곧은 내용의 글들이 많아 배울 점이 많더라고요.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걸 되새기면서 차츰 적응했던 것 같아요.”




ⓒ 글로리어스 엔터테인먼트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는 그가 지난 10여년 간 배우로 살며 터득한 삶의 방식이다. <솔약국집 아들들(2009)>을 시작으로 <웃어라 동해야(2010)> <무사 백동수(2011)>에 이르기까지 출연하는 드라마 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초기작들은 신인 탤런트에게 ‘믿고 보는 배우’ 라는 빛나는 수식어를 선사해주었다. 성공작들이 늘어날수록 주연 배우로서의 자신 감도 높아지고 있었건만 드라마 <총각네 야채가게>를 촬영하면서는 큰 허탈감 을 맛봐야 했다. 방영시간이 저녁 황금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1퍼센트도 되지 않는 저조한 시청률이 그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던 것. 전작들과 똑같이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는 어쩜 이리 다른 것인지 믿기 어려웠다. 이듬해에 방영한 <다 섯손가락>까지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내가 연기를 계속 하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들었어요. <다섯손가락> 이후에 한동안 작품 제의가 들어오지 않아 배우로서 큰 위기였거든요. 제 역량에 의심 이 들기 시작하니까 자존감이 낮아지면서 이대로 연기 생활이 끝날지도 모른 다는 불안감이 몰려왔죠.”


눈앞에 놓인 배우의 길이 처음으로 어둡게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다른 길을 택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엿한 배우가 된 자랑스러운 아들의 모습을 어머니에 게 꼭 보여드려야겠다고 늘 해왔던 다짐이 아직 마음속에 굳건했기 때문이다. 그가 열두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홀로 아들을 키우느라 고생하셨던 어 머니였다. 어렵게 생계를 꾸려 가시는 어머니를 보며 학창시절 그의 머릿속에 는 ‘어떻게 하면 어머니의 고생을 덜어드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착 한 아들이 되고자 공부에만 전념했던 데다가 엄마를 걱정하느라 사춘기를 겪을 겨를이 없었던 어른스러운 아들이 처음 엄마와 큰 갈등을 빚었던 이유는 배우라는 꿈 때문이었다. 대학을 연극영화학과로 진학하겠다는 고3 아들의 뜻에 심하게 반대하셨던 어머니의 속을 까맣게 태우며 이룬 꿈이기에 그렇게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다시 대중 앞에 서기만을 소망하며 공백기를 보내던 중, 다행스럽게도 뮤지컬 <그날들>을 만났다. 힘든 시기에 기적처럼 찾아온 기회 앞에서 낙담만 하고 있을 수 없었던 그는 자신에 대한 의심을 떨치고 배역에만 집중했다.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반복해 읽으며 열심히 캐릭터를 연구한 그는 마침 내 ‘눈빛 하나에 스무 개의 대사를 담는 배우’라는 호평과 함께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배우로서 다시 찾은 존재감은 그 후 점점 또렷해졌다. 드라마 <기황후>에서는 광기 어린 황제 ‘타환’을 섬세한 내면 연기로 그려내 MBC 연기대상 남자 우수연기상을 수상했고, <힐러>와 <The K2>에서는 액션과 멜로 연기를 넘나들 며 다양한 매력을 뽐내 두터운 팬 층을 형성했다. 캐릭터를 완벽히 이해한 후 연기에 임한 덕 분에 얻은 결실들인지도 몰랐다.


“제가 이해한 캐릭터대로 표현해야 저만의 고유한 연기 스타일 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어요. 드라마 시청률이 안 나올 때 누군가가 의견을 줄 때마다 연기 스타일을 바꿔봤는데 그래도 누군가는 또 맘에 들어 하지 않더라 고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란 불가능하단 것을 깨닫고 그렇다 면 내 소신대로 연기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캐릭터를 깊이 연구하는 배우 지창욱은 ‘이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를 고민하며 배역의 말 한 마디와 작은 행동 하나까지 납득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작품 속 인물을 표현하는 직업이지만 연기에는 곧 배우 자신이 투영된다 고 믿는 그는 배역을 온전히 이해하고 나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녹여내 연기 한다. 그래서 배우 지창욱의 색깔을 입은 캐릭터는 늘 입체적으로 살아 숨쉬며 시청자들로 하여금 한 장면을 두고도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한다.


시청자들에게 완성도 높은 연기력을 보여주기 위해 매 작품마다 최선을 다하지만 연기의 보람은 흥행 여부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이제 그는 안다. 결과가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는 것도, 그렇다고 실패작으로 치부해버리기에는 수백 명이 작품을 위해 흘린 땀방울이 너무나 값지다는 걸 항상 되새긴다. 준비 과정 자체가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도록 분위기메이커를 자처하며 현장 분위기를 밝게 이끄는 게 그 의 몫. 따뜻한 동료애로 촬영에 임해서인지 작품이 끝나면 동료 배우 들이 언론 인터뷰에서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할 때가 많다.


“촬영장에 가면 형이 ‘잠은 좀 잤니?’라고 물어봐주거나 ‘땡볕에 왜 그러고 있어’라며 우산을 씌워주면 서 잘 챙겨주셨어요. 사소한 말들이지만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장에서는 큰 힘이 됐죠(배우 이재우).”


“제가 신입이라 촬영장에서 잔뜩 굳어 있으면 선배가 먼저 다가와 유쾌하게 장난을 걸어주 시곤 했어요. 그런 농담들 덕분에 긴장을 풀 수 있었죠(배우 나라).”


촬영 현장 밖에서도 동료들을 살뜰히 챙기는 그는 종종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집으로 스태프들을 초대해 같이 밥을 먹을 정도로 자상한 배우다. 동료들과의 추억을 많이 쌓는 것은 작품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남기기 위해서다. “드라마는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에요. 성공작이 있으면 실패작도 있죠.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일 거예요. 다만 결과를 떠나 제게 모두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도록 노력할 뿐이죠.” 그의 복귀작은 얼마 전 tvN 드라마 <날 녹여 줘>로 결정되었다. 시청률은 섣불리 예측할 수 없지만 그의 필모그래피에 의미 있는 작품이 또 하나 추가되리란 것은 확실해 보인다.


드라마, 뮤지컬, 영화 등 장르 불문하고 종횡무진하며 20대를 몽땅 연기에 쏟아 부었던 배우 지창욱은 어느덧 30대로 들어섰다. 사람은 대개 어른이 될수록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낸 시간에만 의미를 두게 된다. 그러나 어디 모든 일이 뜻대로만 이뤄지던가. 미처 빛을 보지 못한 과정까지 값진 시간으로 남길 줄 아는 지창욱은 오늘도 지혜로운 배우로 성숙해가는 중이다.


글 한재원 기자

 

[출처]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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