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手作] 공존의 아름다움 / 박종진, 도예가

나의 도예 작업실은 경기도 구리시 아차산 둘레길 초입에 있다. 사실 작업실이라기보다는 작은 집을 개조해 거주와 작업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광고 일을 하는 아내와 결혼하고 1년 전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바로 옆 아치울 마을에는 항상 신경 써주시며 도와주시는 선생님이 살고 계시고, 차로 5 거리에는 아끼는 후배가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다. 게다가 옆 마을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공동 작업실에는 새로이 작업을 시작한 대학 후배들이 입주해 한창 작업에 열심이다. 그곳은 지금의 작업실로 독립하기 전까지 내가 8년을 지냈던 곳이다.

초창기에는 공존이라는 테마로 백자 작업을 했다. 공존, 서로 다른 것이 함께 상생하며 하나를 이뤄가는 것. 그것은 내 인생의 지향점이었다. 잠시 대학시절을 회상해보면, 나는 늘 관계의 중간에 위치해있었다. 혈기왕성한 그 시절, 동기들끼리 의견 대립이 있을 때면 나는 늘 중재하는 역할에서 보람을 느꼈다. 당시에는 그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작업하는 것이 즐거웠던 친구들이었는데, 지금은 도예계에서 각자 저마다의 역할을 하고 있다.

도자공예는 점토를 주물러 기물을 만들고 불에 구워 단단하게 석화시켜 완성된다. 말은 간단하지만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은 녹록하지 않다. 점토를 만들기 위해 진흙 상태의 점토를 삽으로 퍼서 널빤지에 펴 발라 말리고, 그 후 다시 기계에 넣어 진공 점토를 만든다. 이 과정을 위해서는 동료들 간의 협동이 필요했고, 미우나 고우나 서로의 손을 빌려야 했다. 그렇게 나는 점토를 접하고 공존을 배웠다.

이처럼 하나로 합하여 생성된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위한 작업이 백자 달항아리였다. 두 개의 각기 다른 형태의 큰 사발을 서로 업어 붙이는 합구 기법으로 만든 것이다. 두 개의 개체가 하나가 되어 탄생한 새로운 공간으로, 전통의 재현을 통해 진화하는 방식을 통해 새로운 조형을 시도했다. ‘공존시리즈에서는 달항아리 접합기법에서 응용한 유약 접합 기법을 도입했다. 본래 하나의 형태로 빚어진 기물을 주관적 의도로 절단하고 건조시켜 낮은 온도에서 초벌번조를 한다. 이후 개별 단위체에 각기 다른 유약을 입혀 다시 원래 형태로포개고 구워 하나로 합치는 기법이다. 이는 굽는 과정에서 유약이 녹으며 자연스럽게 접합되는 방식이다. ‘유약이라는 완전 통제가 불가능한 요소들이 공존의 매개체로 작용하면서 나의 주제를 표현했다.

전통이라는 요소를 직접 경험하기 위해 나는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에서 일했는데, 1년 반 동안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전시와 발굴 보고서 업무에 참여했다. 그렇게 학사와 석사 그리고 실무 경험을 했지만, 새로움에 대한 목마름은 충족되지 않았고, 이후 나는 영국 유학을 떠났다. 새로운 문화와 교육방식, 그리고 언어를 습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에서는 나와는 학번 차이가 무색하게 가까운 선배님이 박사과정 중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선배님의 도움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연구에 몰두해도 모자랄 그 짧은 시간에 나는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비록 전공은 달랐어도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며 자연스럽게 만난 것이다. 타국에서도 나에게는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했다.

나의 새로운 작업은 종이에 흙물을 바르고 쌓아서 굽는 작업이다. 한 겹씩 수천 장을 쌓아 올리며 잡념을 버리고 끝을 향해 인내했다. 나 홀로 한자리를 점유하고 끊임없이 반복을 수행하는 것은 주변과의 관계와 늘 함께하며 작업해온 방식과는 매우 달랐다. 외롭기도 했고 끝을 알 수 없는 터널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불현듯 이런 생각을 했다. 기존의 공존의 방식이 두 개체를 하나로 합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수천 번의 쌓임과 결합이었다. , 수천 번의 공존을 하나의 기물로 표현한 것이다. 그것을 고온으로 단 한 번 구워내면 종이는 타서 사라지고 종이의 겹과 같은 형상의 점토 물질만 남게 된다. 종이는 형태와 물질의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사용되는 희생의 매개체다.

나는 가끔 내 작업 사진을 정리하고 편집하여 책으로 인쇄하는 것을 즐겨 한다. 작품집이라고 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는 이쪽 계통에서는 필수인데, 누군가에게 내 작업을 선보이기 위함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이유로 직접 이 작업을 한다. 작품을 보면 그때의 내가 떠오른다.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신 부모님, 함께한 나의 사람들과 주변을 둘러쌓고 있는 그 무엇을 위해 작업을 다시 들여다본다. 나는 그렇게 그들과 공존을 시도하며 살아간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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