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객석’ 기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벌거벗은 임금님의 비극적 연극놀이

연극 ‘굴레방다리의 소극’

3월 9~30일 |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서울 북아현동, 한때 굴레방다리로 불렸던 동네의 허름한 연립주택 지하방. 서울 한복판이지만 이곳의 시공간은 멈춰 있다. 아버지 대식은 두 아들 한철과 두철과 함께 집안에서 매일 똑같은 연극을 반복한다. 그 내용은 이들이 서울에 오기 전 고향 연변에서 있었던 할머니의 죽음과 그로 인한 유산을 둘러싼 형제의 갈등이다.

큰아들 한철과 작은아들 두철은 벌벌 떨면서 아버지에게 꼼짝 못 하며 ‘엄마 얼굴도 생각나지 않고,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도 모른 채’ 매일매일 같은 연극을 반복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이 연극에 사실인 게 어딨습니까?’하고 아버지에게 반문하기도 한다. 아버지가 주도하는 이 연극은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을 위한 작은 왕국과도 같다. 모두가 거짓인 줄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이벤트. 독재 국가의 프로파간다를 떠올린다.

두철이 실수로 다른 사람의 장바구니를 들고 오면서 소동은 시작된다. 연극에 쓰일 소품을 준비하러 매일 아침 똑같은 마트에서 똑같은 내용물을 사 오던 두철이 어느 날 장을 잘못 봐온 것이다. 파전 대신 동그랑땡, 닭 대신 소시지가 나오자 아버지는 분노하며 폭력을 휘두른다.

마트 직원인 몽골 여성 김리가 등장하며 이들만의 연극은 깨지기 시작한다. 두철이 놓고 간 장바구니를 가져온 김리는 두철을 향해 호감을 내비치고, 두철은 김리가 해코지당할까 불안해한다. 언제나 아버지에게 순종하던 두철은, 처음으로 진실을 이야기한다. 아버지의 연극은 거짓투성이이고, 아버지가 동생 부부를 죽이고 연변에서 서울로 도망쳤다는 사실을 끄집어낸다. 아버지와 두 아들과 김리의 불안은 극에 달하고, 형 한철은 이 비극적 연극놀이를 끝내기로 결심한다. “난 이 연극을 끝낼 준비가 되어있어.” 동생에게 완벽한 자유를 마련해 준 형의 마지막 장치는 죽음이었다. 한철은 연극을 하는 척하며 아버지를 칼로 찌르고, 김리의 비명을 들은 두철은 한철이 김리를 해치는 줄 착각하고 한철을 칼로 찌른다.

아버지와 형이 쓰러져 있는 집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간 두철은,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온다. 문을 걸어 잠그고, 아버지가 연극을 시작할 때마다 틀었던 노래를 재생하고 홀로 연극을 시작한다. 집 바깥, 연극 바깥의 실제 세상을 맞닥뜨려본 적 없는 두철은 결국 굴레방다리의 지하방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사다리움직임연구소 창단 20주년을 맞아 오랜만에 무대에 오른 ‘굴레방다리의 소극’의 원작은 아일랜드 작가 엔다 월쉬의 희곡 ‘월워스의 소극(The Walworth Farce)’이다. 고립된 채 사고와 자아가 일그러진 이들의 슬픈 초상을 통해 지금 우리의 모습을 비춰본다. 이정은

 

더블베이스, 날개를 달다

성민제 더블베이스 리사이틀

3월 15일 오후 8시 |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봄을 앞두고 마지막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 날이었다. 비가 눈이 되고, 다시 비가 되어 내리기를 반복했다. 공연장까지 가는 길이 이렇게 힘들었던 적이 있었던가.

이날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의 리사이틀이 열렸다. 기존에 공지되었던 것과 달리 프로그램에는 약간의 변동이 있었다. 브루흐, 에클레스, 피아졸라, 파가니니로 이어질 예정이었던 1부 프로그램에서 피아졸라를 대신해 슈베르트 ‘마왕’이 연주된 것.

브루흐 ‘콜 니드라이’와 에클레스 소나타에서 성민제는 더블베이스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한껏 뿜어냈다. 낮은 음역만이 줄 수 있는 편안함, 그 진한 음색과 울림이 귀를 편안하게 감싸 안았다. 애수에 젖은 젊은 청년의 매혹적인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어 파가니니 ‘모세 환상곡’과 슈베르트 ‘마왕’이 차례로 연주되었다. 더블베이스로는 무대에서 자주 만나볼 수 없었던 작품들이었다. 그의 연주는 자유롭게 무대를 활주했다. 큰 덩치에 둔할 것 같았던 악기의 이미지를 깨끗하게 벗어 버리고, 빠른 템포 위를 날렵하게 노닐었다. ‘마왕’에서 그 매력은 더 배가됐다. 음악 속 장면과 그 안의 캐릭터가 무대 위에 살아 숨 쉬는 듯, 끊임없는 음색의 변화가 펼쳐졌다. 공연의 부제처럼 더블베이스가 ‘조연에서 주연으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2부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장유진과 비올리스트 이한나, 앞서 함께했던 피아니스트 최현호가 함께 무대를 꾸몄다. 모두 크라이슬러의 작품으로만 채워졌다. ‘타르티니 스타일의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말라게냐’ ‘사랑의 슬픔’ ‘아름다운 로즈마린’ 등 모두 4~5분 내외의 짧은 곡들을 각기 다른 편성으로 선보였다. 1부가 독주 악기로서의 더블베이스를 보여주었다면, 클라이슬러의 작품으로는 앙상블 안에서의 존재감을 보여준 것이다. 둘 혹은 셋이 꾸민 무대는 탄탄한 편곡 위로 모두 다채롭게 빛났다. 보는 이들 또한 그 매력에 취해 단순히 듣기만 하는 소극적인 자세가 아닌, 무대를 함께 만들어가는 적극적인 관객의 모습으로 공연의 분위기를 만들어 갔다. 이날 클라이슬러의 작품이 담긴 성민제의 음반도 발매됐다. 미처 공연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의 아쉬움은 이곳에서 채워야겠다. 이미라

 

 

슬픈 달에 비친 자화상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

3월 5~17일 |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시. 밤새워 몇 번이고 고쳐 쓴 시 착한 시 한 줄 쓰고 싶었던 내 마음이 작은 욕심이었는지 뉘우침 없는 세상에 실망하며 쓴 시, 바위 같은 고통 지울 수 없어 지우지 못해 단 한 순간이라도 세상 모든 것들이 나만의 시가 되면 좋을 텐데.

‘윤동주, 달을 쏘다’는 청춘의 꽃을 피우지도 못한 채 가혹한 시대의 바람이 되어 스러져간 시인 윤동주의 삶을 담아낸 창작가무극이다. 벌써 다섯 번째 공연된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이지만 올해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시 오르며 진한 여운을 남겼다.

1막 무대는 윤동주와 송몽규, 정병욱이 아픈 시대 속에서도 사랑하고 꿈꾸는 청춘의 에피소드를 밝은 에너지로 채색한다. ‘서곡’ ‘내가 잊었던 것들’ ‘경성 경성’ ‘사라진 봄’ ‘얼마나 좋을까’ 등 뮤지컬 넘버와 함께 펼쳐지는 가무극과 ‘누가 기억할까’ ‘사라진 봄’ ‘시를 쓴다는 것’을 부르며 점점 어두워지는 시대의 비극적인 무대 분위기는 역동적인 극의 호흡을 더해준다.

2막 무대는 전쟁 속에서 고뇌하는 아픔과 옥중에서 어머니와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리운 것들을 애타게 부르며 세상을 떠나는 윤동주의 모습이 그려진다. 특히 윤동주의 시가 낭송될 때면 그의 착하고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객석을 숙연하게 했다.

‘팔복’ ‘간판없는 거리’ ‘십자가’ ‘아우의 인상화’, 그리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참회록’ ‘서시’ ‘이별’이 낭송될 때 그가 전쟁이라는 암울한 시대 속에서 얼마나 고뇌하고 아파했는지 그대로 전해졌다. 안무도 인상적이었다. 순수한 20대 청년이 고민했을 법한 자신의 꿈, 우정, 사랑이 아름답게 묘사되다가도 갑작스럽게 바뀌는 암울한 시대의 비극, 총성, 훈련 장면이 대조적인 몸짓으로 묘사되었다. 그들이 나라를 잃은 비극의 씨줄을 가지고 자신들이 갖고 있는 순수한 열정이라는 날줄로 아름다운 삶의 작품을 써 내려 가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윤동주 역의 박영수, 송몽규 역에 김도빈, 강처중 역의 조풍래, 이선화 역의 하선진은 서로의 호흡을 잘 가다듬으며 각자의 역할에서 최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시 만나야 할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별이 된 윤동주. 마지막 그가 외친 별 헤는 밤의 시어는 그가 지금까지 우리 마음 속에 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윤동주가 달을 쏘는 모습이 그려졌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에 진정 부끄러운 나의 얼굴을 비춰보고 싶은 애닯고 슬픈 달이었다. 국지연

 

 

강요된 애국심이라는 오명을 벗다

뮤지컬 ‘신흥무관학교’

2월 27일~4월 21일 | 광림아트센터 BBCH홀

(c)육군, 쇼노트

뮤지컬 ‘신흥무관학교’는 1907년 대한제국 군대해산에서부터 1920년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끌기까지 신흥무관학교가 설립되고 성장하며 소멸하는 과정을 그린다. 여느 공연 장르에서도 신흥무관학교는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아니었기 때문에 제목에서부터 신선함을 자아냈다.

실제 전투 장면을 완벽히 재현하기란 불가능한 점을 고려하여 무대는 상징적으로 풀어냈다. 회전하는 세트로 한·일 간 격변하는 상황을 표현했고, 산을 상징하는 기울어진 세트와 허공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난간을 통해 급박한 전쟁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빛을 발한 것은 상징적인 세트 위 정확한 군무로 전쟁 장면을 구현해낸 배우들이었다. 실제 군인 출신의 배우가 대거 포진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방부 태권도 시범부대에서 차출된 장병들이 앙상블로서 참여한 만큼 각 잡힌 군무는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남성 독립운동가에 비해 크게 다뤄지지 않았던 여성 독립운동가를 조명한 점 역시 긍정적이었다. 나팔과 혜란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을 뿐 아니라 실제 신흥무관학교의 살림을 책임졌던, 우당 이회영 선생의 부인 이은숙 여사가 등장하는 장면은 짧지만 임팩트 있게 전달됐다.

동규·팔도·나팔 등 실제 그 시대에 있을법했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관객의 공감을 유도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그들은 신흥무관학도이기 이전에 평범한 학생이자 청춘이었다는 것을 표현하는데 극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으며, 휴먼 스토리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대중성을 확보했다. 그러나 신선한 소재였던 신흥무관학교가 숱한 학교 중 한 곳이 되어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실존 인물이었던 이회영·이상룡 선생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로서 신흥무관학교가 설립되었고 해산된 대한제국 군인들이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참여하면서 학교가 발전해간다는 역사적 사실이 곳곳에 녹아있기는 했으나, 학도들의 훈련 과정과 전투를 그린 서사가 좀 더 역사적인 구체성을 가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아쉬움보다 큰 것은 애국심이었다. 극적인 텍스트와 웅장한 넘버가 조화를 이룬 ‘가난한 유서’나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전율을 일으켰다. 동규와 팔도 간 갈등이 폭발하는 넘버 ‘물고기’에서도 일제의 권력에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눈물겨움이 잘 표현됐다

[출처] 월간 객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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