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가 달라졌어요

장위동 가꿈주택 감나무 골목 프로젝트

우리 동네가 달라졌어요

 

내 집 마당 안쪽의 풍경을 이웃과 나누는 일, 감나무에서 무르익은 대봉을 낯선 이들과도 기꺼이 나눠 먹는 일이 서울 한복판에서 가능할까? 이 낭만적인 이야기는 골목에 돗자리를 깔고 함께 여름밤을 나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도, 거주민이 10여 가구도 안 되는 오지 마을 얘기도 아니다. 서울시 성북구 장위동 234-26번지 일대, 4,400㎡의 ‘연주황 골목길’이라는 이름의 동네에선 이 향수 어린 장면이 실제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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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위동에 새로 나타난 이 다정한 풍경과 골목 문화는 이곳이 서울시의 첫 '가꿈주택 골목길 정비 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일어난 변화다. 이곳에서 40여 년 거주한 주민 조정오 씨는 지금과는 180도 다른 분위기였던 골목 분위기를 이렇게 회상한다.

예전엔 이 길에 근처 중·고등학생들이 몰래 숨어 담배를 피우러 왔었어요. 거리가 아주 지저분하고 분위기도 칙칙했습니다. 비가 오면 도로 위 물이 잘 안 빠져 빗물이 웅덩이처럼 고여 있고요. 오래 알고 지낸 이웃이 많긴 하지만 집들이 다 높은 담장 안에 숨어 있어 딱히 교류하지도 않았습니다.
 

담장 바깥의 화단은 마을 주민들이 함께 돌보는 골목길 정원이다.


2017년 첫 '시작'을 끊은 장위동 가꿈주택 골목길 정비 사업은 12번의 주민회의를 거쳐 2018년 7월에 모든 여정을 끝마쳤다. 이 골목에 일어난 변화와 개선은 모두 골목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결과다.

가시적인 성과는 골목 초입에서부터 드러난다. 담장을 전부 헐고 마을 주민의 사랑방으로 기능을 확장한 성북 우리동네키움센터와 동네 소식, 마을 행사, 동네 아이들이 그린 그림 등이 붙어 있는 게시판은 연주황 골목길 사람들의 끈끈한 유대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길이 넓고 환해진 건 자신의 집 담장을 마당 안쪽으로 30cm가량 들이는 데 기꺼이 동의한 주민들의 양보 덕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틈새 공간엔 동네 사람부터 지나가는 초행자까지 누구나 앉아 쉴 수 있는 벤치, '스트리트 퍼니처'가 들어섰다. 그 옆에 나란히 있는 화단은 마을 사람이 따로, 또 같이 가꾸는 골목길 공동 정원. 계절이 바뀌면 집집마다 심어놓은 감나무, 대추나무, 호박, 덩굴장미 등이 함께 어우러져 연주황 골목길의 서정적인 풍경을 완성한다.

'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장소를 '보기 좋고 편하게' 바꿀 때, 공간은 원래의 정체성을 잃기 쉽다. 연주황 골목에서 바뀐 건 허문 시멘트 담벼락을 대신하는 나무 소재의 담장, 경쾌한 주황빛 대문과 쥐 죽은 듯 조용했던 골목을 채우는 동네 사람들의 인사와 아이들의 목소리다. 이 골목을 오랫동안 지켜온 감나무와 붉은 벽돌 주택의 벽과 창틀, 지붕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은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박학용(서울특별시도시재생 지원센터 주택사업단 단장)

 

Q '서울가꿈주택'과 '골목길 정비 사업'의 목적은 무엇인가?
주택에 대한 도시 재생 사업의 지원 영역은 두 갈래로 나뉜다.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 생활 공공 서비스와 돌봄 서비스를 확보하는 일. 전자는 서울의 오래된 집을 고치고 잘 관리하며 유지하는 일이 핵심이다. 대규모 재개발 사업은 더 이상 도시 계획의 유일한 답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보존하고 지키며 꾀할 수 있는 변화에 관심을 갖고 있다. 낡은 집과 낙후한 동네 골목을 바꾸기 위해 공공이 할 수 있는 일은 시민이 스스로 집과 길을 정비하고 수리하는 움직임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골목길 담장 허물기를 비롯해 노후 주택 집수리를 지원하는 '서울가꿈주택', 골목길을 정비해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골목길 정비 사업'이 대표적인 예다.

Q 무엇을 바꿨나?
장위동 234-26번지 일대의 주택 중 24호가 참여해 담장을 허물었다. 담 높이를 낮추고 동시에 길을 넓히기 위해 주민 동의하에 담을 안쪽으로 30cm 들여 재시공했다. 그렇게 생긴 여유 공간에 벤치와 화단을 만들고 대문으로 출입하지 않는 세입자들을 위한 계단도 마련했다. 노후 하수관을 개량하고 길도 새로 깔았다. 가로등, 바닥등, 보안 CCTV를 설치한 것은 주민의 만족도가 높은 변화다.

Q 공간의 외형적 변화로 주민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나?
낮은 담장이 대화를 부른다. 처음엔 조금 어색하다가도 눈을 마주치면 인사하게 되고 말을 트는 것이다. 공동체 문화는 거창한 게 아니라 이런 작은 '소통'에서 출발한다.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곧바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이웃집에 불이 나거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겼을 때 주위 사람들이 곧바로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라이프스타일, 삶의 질은 단순히 내 집을 리모델링한다고 해서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또 집 바깥 환경만 바뀐다고 해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안팎의 물리적인 변화와 내 집, 우리 동네를 둘러싼 커뮤니티가 함께 만나야 가능해진다.

Q 왜 도시 재생이 중요할까?
도시에서 주거지를 찾는 일은 자신의 자산보다 더 많은 돈을 써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대규모 재개발은 한 동네의 역사와 공간성을 다 지우고 새로운 사람, 새로운 문화로 채우는 방식이었다. 재생은 이 두 문제를 동시에 해결한다. 사람들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거주지를 잃고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터전을 주체적으로 지키고 가꿀 수 있게 한다는 뜻이다. '공동체'의 재생은 도시 재생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다. 커뮤니티가 살아나면 공공의 손이 닿지 않는, 정책으로 다룰 수 없는 많은 문제가 해소된다. 높은 담장, 고층 아파트 안에서 고립돼 살다가 요양원으로 가는 노인 문제, 그리고 육아, 양육과 관련된 어려움이 '공동체'를 통해 일부 해소될 수 있다. 서울가꿈주택 골목길은 이런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도록 공공과 시민이 함께 만든 물리적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감나무 골목 사람들

낡은 집이 가꿈주택으로 단장을 마치며 으슥하고 비좁은 길에 '연주황 골목'이라는 근사한 별명이 생기면서 이곳 주민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토박이 주민부터 아이들까지, 장위동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조정오(자영업, '장위동 가꿈주택 골목길 정비 사업' 주민 대표)

    장위동에서 산 지 벌써 40년이 넘었어요. 이곳에서 아들딸 낳아 대학 보내고 시집, 장가 다 보냈거든요. 우리 가족의 역사가 모두 이 곳에 있기 때문에 집과 동네에 정이 많이 들었죠. 그래서 처음 가꿈주택 골목길 정비 사업 소식을 들었을 때 100% 찬성했습니다. 주민 대표로 나서서 기획 단계부터 아이디어를 보태고 반응이 좀 미지근한 주민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죠. 가꿈주택 골목길 정비 후 이웃들과 인사하고, 교류도 하게 돼 좋습니다. 담을 낮추니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눈을 맞출 수 있거든요. 이젠 마당에서 가족과 바비큐 파티를 할 때 지나가는 이웃에게 와서 한 점 먹고 가라고 해요. 가을엔 집집마다 주렁주렁 열린 대봉을 온 마을 주민과 함께 나누기도 하고요. 가꿈주택사업으로 지원받은 수리비를 보태 집 안팎을 재단장했는데, 보기에도 좋지만 단열이 잘돼 올겨울을 따뜻하게 났어요.

  • 이진숙(주부, 장위동 마을해설사)

    가꿈주택과 함께 이 길이 재단장된 뒤 일부러 이 골목을 지나서 다녀요. 햇살이 환하게 들 때 길이 참 예쁘거든요. 장위동 사람들의 산책을 즐겁게 해주는 걷고 싶은 거리가 됐죠. '가꿈주택과 골목길 정비 사업'을 비롯한 도시 재생 사업이 동네 분위기뿐 아니라 제 삶도 바꿨어요. 4년 전 장위동으로 이사왔을 땐 낯선 동네에서 이웃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러던 중 골목 가꾸기 활동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웃을 만나고 이곳 장위동이라는 마을에 스며든 거죠. 2017년에 마을해설사 양성 과정을 이수해 동네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어요. 장위동에 얽힌 근대사와 아파트촌에선 볼 수 없는 주택으로 이뤄진 동네의 매력을 더 깊이 알게 됐거든요. 장위동은 재개발로 '시간'의 흔적을 밀어버리지 않은 덕에 당시의 독특한 건축 양식과 도시에선 경험하기 어려운 이웃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입니다. 올해 5월 '도서관'이 문을 열면 이 동네에도 사람들이 모여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 센터가 생기는 거예요. 벌써 설레요.

  • 조은미(오른쪽, 성북 우리동네키움센터 교사)

    '성북 우리동네키움센터'는 서울시에서 초등학생 전용 돌봄 공간으로 만들어 지원하는 곳이에요. 2018년에 첫 문을 연 4곳의 시범 센터 중 하나로 아이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와서 자유롭게 책도 읽고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숙제도 하는 공간이죠. 가꿈주택과 골목 정비 사업 덕분에 아이들이 더 밝고 안전한 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어요. 길도 넓어지고 가로등, CCTV도 생겨 엄마들이 참 좋아해요. 저도 교사이자 학부모로서 이런 변화가 반갑고요. 담장이 낮아지고 골목길에 사는 사람들이 소통하면서 주민들의 마음도 더 많이 열린 것 같아요. 아무래도 아이들이 골목에서 신나게 뛰어다니거나 큰 소리로 떠들며 노는 날이 많은데 단 한 분도 주의를 주거나 항의하는 사람이 없거든요. 아이들을 예쁘게 봐주고 배려해주는 덕이죠. 동네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만드는 프로젝트가 동네 분위기를 더 밝게 해준 것 같아요. 동네 일을 도모하면서 서로 더 가까워졌거든요. 그 과정에서 키움센터가 마을의 사랑방 같은 공간이 되었어요.

  • 장곡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들(왼쪽부터)

    정시우
    키움센터 마당이 넓어져 재미있는 놀이를 많이 할 수 있어요. 림보랑 줄다리기가 제일 재미있거든요. 피구도 할 거예요.

    김예음
    길에 담배꽁초와 쓰레기도 많았는데 지금은 깨끗해졌어요. 그래서 자꾸 밖에 나가 놀고 싶어요. 친구들이랑 담장 앞 벤치에 앉아 얘기도 하고, 감나무 벽 앞에서 사진도 찍고 놀 수 있어 좋아요.

    양강우
    그냥 다 좋아요! 감나무에 빨리 감이 열렸으면 좋겠어요!

    김건희
    담이 낮아져서 좋아요. 감나무가 잘 보이니까요. 그리고 길이 밝아져서 술래잡기도 하고, 줄다리기도 하고,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게 제일 좋아요!

    김주원
    아파트에 살 땐 막 뛰어놀지 못했는데 여기서는 마음껏 달릴 수 있어요. 마당이 있는 것도 좋아요. 집보다 밖에서 노는 게 훨씬 재미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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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나무 골목이 쾌적해진 건, 집집마다 담벼락을 헐어 낮은 담을 세우는 데 적극 참여한 주민들 덕이다. 2 골목 한편에는 작은 도시형 텃밭이 마련되어 있다.
3 골목 곳곳에 가로등과 CCTV가 있어 밤에도 안심하고 다닐 수 있다.


서울가꿈주택을 신청하려면?

서울가꿈주택이란
노후 주택 집수리를 지원하는 '서울가꿈주택'은 집수리 비용 보조, 전문가 파견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단열, 방수, 담장 수리 등의 집수리 공사비 보조금, 융자를 지원하고(1,000만원 이내에서 해당 공사비의 50%까지. 단, 내부 공사비는 최대 300만원 이내) 서울시 공공 건축가를 통해 주택 진단, 집수리 상담 등을 받을 수 있다.

어떻게 신청할까?
도시재생활성화지역(근린재생 일반형) 내 20년 이상 경과한 단독·다세대 주택(상가 주택의 경우 주택 부분 면적이 전체 연면적의 50% 이상일 경우) 소유자가 신청할 수 있다. 거주 중인 지역별 도시재생지원센터 또는 자치구 담당 부서에 신청서, 집수리 견적서 등을 제출하면 전문가가 단체 참여도, 타당성, 공사 범위, 외부 개선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종 결정한다. 좀 더 자세한 방법과 안내는 지역 현장 도시재생지원센터나 서울특별시도시재생지원센터에 문의하면 된다.(2018년 기준)

[출처] 우먼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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