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그 상상의 공간] 비천몽(飛天夢) / 양재문, 사진작가

초인의 삶을 살고 싶은 바람이지만 행하지 못하는 나의 습은 미몽의 시공간에 머물고 있다. 그렇게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교차하여 뒤엉켜진 시간의 흔적은 현실 또한 꿈인듯하여, 때론 깨인 꿈도 꿈속 같다. 우리의 전통춤에서 무희가 흩날리는 치맛자락의 고운 자태는 내가 머물고 있는 몽유의 슬픈 흔적을 치유하듯 신명스러운 빛으로 다가온다.

나의 작업은 한국 전통 춤사위에서 파생되는 흔적의 여운을 표현한 것으로, 찰나의 연속성에 대한 추상이다. 한국 춤의 매력은 바로 들숨과 날숨의 기운을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것으로, 그 절묘한 찰나의 여운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춤사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찰나의 여운은 내가 선택한 카메라 셔터 속도 시간 동안에 그 흔적이 고스란히 사진에 담기게 된다. 무희의 오방색 치맛자락에서 흩날리는 아름다운 자태에 매료되어 그 찰나에 연속되는 시퀀스적인 흔적을 한 장의 사진에 담아내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지난 1994년 발표한 풀빛여행(Blue Journey)’에서 시작되었고, 나에게는 깊은 영혼의 늪을 헤매는 몽환이자 환상이다. 풀빛여행 작업은 전통적인 사진 방식을 고수하면서도 한국의 전통미를 은유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이다. 무용평론가 김영태 씨는 초서체를 보듯 풀빛여행에서 보이는 이미지의 자유분방함은 춤이 움직이는 예술로서 한몫을 한다며, 양재문은 움직임의 광적들을 때로는 냉소적으로, 때로는 잔상의 미로 붙잡고 있다고 하였다.

이후로도 나는 지남에 대한 시간의 흔적들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작업을 해왔다. 우리 전통춤의 들숨과 날숨으로 만들어진 오방색깔 치마폭의 움직임을 신명나게 풀어내고자 다시 작업한 비천몽(Heavenly Dream)’은 지난 풀빛여행 작업과 달리 절박함에 의한 안타까움이 아니라 아픈 기억의 맺힘이 신명스러움으로 풀리기를 기원하는 작업이었다. 천상의 춤을 꿈꾸며 묵묵히 날갯짓하고 싶다는 의미였다. 또한 하늘에 계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자 불효에 대한 고백이다. 맺혀야 풀 수 있다 하였던가. 젊은 날의 한에 대한 넋풀이 작업으로 비천몽은 나에게 슬픈 기억의 흔적을 어루만져 주는 위로의 선물이기도 했다.

그리도 힘들어했던 젊은 날의 한을 이제 나는 아리랑이라 부른다. 아리랑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시대적 상징의 아이콘이자 서사시 같은 우리의 혼이다. 군무 시리즈가 더해진 아라랑 판타지(2018)는 비천몽 작업을 통하여 받은 격려와 위로를 나누고자 하는 마음으로 기획한 전시였다.

오늘도 나는 아름다운 천상의 춤을 꿈꾼다. 이제 내 안에 살아 숨 쉬는 우리 전통춤의 오방색은 고요하다. 뒤돌아보면 지나온 삶의 지평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을 듯하다. 그동안 사진을 찍어 오면서 얻은 바보 철학이 있다면 그것은 아무리 멋진 장면이라도 셔터를 누르지 않으면 사진은 찍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록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라고 해도 나는 내가 선택한 그 길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 전통 춤을 추상 이미지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영국 일포드씨바크롬 사진전 최우수상 수상(1988).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 크라운해태 아트밸리’, 갤러리 등에 소장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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