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手作] 작지만 꼭 이루고 싶은 꿈 / 양정은, 호호당 대표

고등학교 1학년 때, 한 명씩 앞에 나가서 장래희망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세상의 멋진 직업들이 넘실대던 시간, 내가 말했던 장래희망은 조그만 호텔 주인이었다. 1층에는 직접 요리하는 조그만 식당이 있고, 그릇 하나도 이불 하나도 내가 고르고 만들어 정성껏 준비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한 기억이 난다. 더 멋진 직업을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꼭 이루고 싶은 꿈을 말했고, 지금도 그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사람들이 호호당이라는 이름을 듣고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뭐 하는 곳인가요?”이다. 한국의 색을 담은 제품을 만든다는 말로 설명하고 있는 이 공간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 속 구석구석에 한국의 색을 입히는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곳이다. 보자기와 식기, 배냇저고리와 금줄, 기러기와 예단함 등을 만들고 계절에 따라 윷놀이나 부채도 만들곤 하지만, 한국의 색을 그 기본 줄기로 두고자 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호호당을 운영하기 전 맑은 물 길어 밥 짓는 곳, 정미소()’라는 작은 한식당을 운영한 적이 있다. 소반에 1인상을 차려서 내고, ‘골동반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비빔밥을 선보이던 곳이었다. 매일 새벽 장을 보고, 아침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마감하고 집에 돌아가 눕고 나면 밤 11시가 넘곤 했지만, 그때처럼 보람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식당만큼 고객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구슬땀 흘려가며 만든 요리가 서빙되는 모습을 주방 한편에서 두근거리며 지켜봤다. 한 술 떠서 입에 넣고 짓는 그 환한 표정을 보면 자신감이 생기고 피로가 풀리는 마법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머릿속에서 상상만 하던 것들을 살면서 하나하나, 차근차근 내 손으로 만들어보자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식당 이후 두 번째 프로젝트라고 생각하는 호호당은 정미소와 결은 같지만, 보다 다양한 작업들이 가능한 공간이다. 그중 호호당의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제품은 바로 보자기이다. 보자기란 한때 우리 삶 속에서 익숙한 것이었지만, 다음 세대에 그 소중함이 온전히 전해지지 못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대표적인 한국의 생활용품이 아닐까 싶다. 삶의 중요한 순간들은 물론, 보통의 날들 속에서도 일상을 보다 정성스럽게 해주는 보자기. 호호당은 그런 것들에 새로운 옷을 입혀 선보이는 것을 좋아한다.

정미소를 정리하면서 정든 직원들과 나눈 이야기가 있다. ‘우리 언젠가 꼭 다시 만나자라고. 스물일곱, 식당 말고도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았던 그때보다 경험도 늘고 마음의 여유도 생긴 먼 훗날, 어딘가에서 꼭 다시 정미소라는 이름 아래 모이자고 했다. 그리고 언젠가 그런 날이 정말로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몇 없는 객실이라도 그 안에 호호당의 이름으로 만든 침구와 생활용품들이 가득하고, 1층으로 내려오면 정미소라는 이름의 식당에서 마음 편해지는 요리가 만들어지고 있는 작은 호텔.

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고등학교 1학년 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형태로 내 마음을 채우는 이미지이다. 다만 그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는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할 수 있을까, 가능할까, 사람들이 좋아해줄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옳은 길이라면, 그리고 그로 인해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열심히 달려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조금은 알 것 같기 때문이다. 20전의 두려운 감정이 10년 전의 확신이 되고, 지금은 또 다른 10년 후를 그리며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채워가고 있다.

물론 매일을 조바심으로 채우던 날들도 있었다. 오늘의 공부가, 오늘의 노력이, 오늘의 작업과 오늘을 채운 이런저런 선택들이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로 나오지 않을 때. 과연 이게 맞는 건가, 내가 지금 옳게 가고 있는 건가 초조함과 조바심이 생기기도 했다. 그럴 때면 요리를 가르쳐주신 스승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떠올리곤 한다. ‘힘들지? 하지만 정은이 네 손은 지금 전문가의 손이 되어가고 있는 거야. 그 두 손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 가서도 일을 하고 먹고 살 수 있는 거야.’ 전갱이를 다듬고 나물을 다듬으며 이게 옳은 길인가생각했을지 몰라도 재료를 다듬고 씻고 볶는 일련의 과정이 배어든 내 손은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야라고 생각하게 해줬다. 때문에 작은 노력들이 쌓이지 않으면 절대 꿈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늘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열심히 30대와 40대를 보낸 후 늘 꿈꾸던 공간을 만들 날을 종종 떠올린다. ‘조그마한 호텔에 호호당이라는 명패가 걸려있고, 그 안에서 맛있는 음식 냄새가 흘러나온다면 꼭 문을 열고 들어와 주세요. 그곳은 아마도 소박하지만 기품 있는 공간일 거예요.’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그 공간이 마음속 선명히 그려지는 건 아마도 오랫동안 꿈꿔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열일곱에 꾸던 꿈을 향해 작지만 단단한 걸음을 내딛는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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