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다큐멘터리]HAY

 

이슈 소개

 

일흔두 번째 매거진 입니다.

 

가끔씩 팀원들의 책상 풍경을 둘러볼 때가 있습니다. 사무실 책상이란 일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자, 개인의 공간이면서 완벽히 사적이지 않은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무실 책상 위에 가장 아끼는 물건이나 값비싼 물건, 혹은 세심한 관리를 요하는 물건을 둘 일은 많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나다움’을 유지할 장치와 같은 물건이필요할 때가 있죠. 특히 크리에이티브 기반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여기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잠시나마 생각을 환기하고 숨을 고르며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는 일이, 특정 물건을 사용하고 바라봄으로 가능해지니까요. 지금 이 글을 쓰는 제 책상을 둘러봐도 그렇습니다. 미니 캔들과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크기의 장식용 오브제, 디자인된 케이스에 담긴 초콜릿이나 민트, 출장이나 여행길에 사온 로컬 브랜드의 포스트잇과립밤 등이 시야 안에 들어오는 물건이죠. 대부분은 매일 쓸 만한 물건이면서, 꼭 이 물건이 아니어도 되는 것들입니다. 마치 내 입맛에 맞는 커피 한 잔처럼 적당히 괜찮은 기분을 선사하는 것이랄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무실이라는 공동 공간에서 부담 없이 쓸 정도의 범위 내에 있다는 것이죠.

 

이번호에 소개할 덴마크의 리빙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헤이의 물건이 제게는 그렇게 각인 되어 있습니다. 처음 헤이라는 브랜드를 접한 건 유럽의 어느 디자인 편집 매장에 진열된 황금색 가위를 통해서였죠. 그 이후 여러 편집매장을 다니며 컬러풀한 패턴을 입힌 옷걸이와 마름모 모양의 철제트레이, 몸체와 칫솔모가 하나의 컬러로 통일된 칫솔등을 구매했고, 최근엔 그리스트에 디자인 마이애미와 협업한 미니 노트 몇 권과 폴리프로필렌 소재의 장바구니를 추가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헤이의 물건을 고를 때마다 가격이나 실용, 취향 등의 요소를 깊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디자인이되 표현의 수위가 지나치지 않고,기회 비용을 떠올릴 만큼 가격 장벽이 높지 않은 것이 주효했기 때문인데요. 디자인 소품 뿐 아니라 헤이가 선보이는 가구 역시 이런 전략과 태도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를 키우며 적절히 취향에 대한 타협을 해야 하는 가정이나, 인테리어에 대규모의 예산을 투입할 수 없는 캐주얼한 카페 혹은 스타트업 사무실에서 헤이의 의자와 테이블, 선반 시스템을 반기는 건 그들의 디자인이 보여주는 포용성 덕분이죠. 코펜하겐 현지 취재를 통해 만난 헤이의 사용자들 역시 입을 모아 헤이의포용성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들의 공간을 채운 헤이의 제품은 헤이보다 값싼 물건과도, 헤이보다 값비싼 물건과도 스스럼 없이 어울리죠. 외골수 같은 거장의 가구 옆에서 주눅들지 않으면서 적당히 주연을 빛나게 해줄 줄 아는 면모는 곁에 두고 싶은 친구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저희는 사랑하는 걸 꼭 소유해야 하는 부류는 아니에요.” 헤이의 창립자이자 브랜드 전반의 크리에이티브를 책임지는 롤프&메테 헤이 부부가 언론과 나눈 인터뷰 중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이 구절은 꽤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시간과 돈이란 자원을 쪼개 쓰는 삶에서 늘 최고의 선택, 1순위를 취하기는 쉽지 않고, 1순위를 취하는 데는 많은 정보와 에너지를 필요로 하죠. 2순위나 3순위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은 일상에서 생각보다 빈번하게 일어나고, 이 말은 곧모든브랜드가 1순위가될만한물건을만들필요가없다는뜻이기도합니다. 매력적인대안이되는것에꽤많은기회가열려있다고볼수있는것이죠. 특히가구를위시한리빙라이프스타일시장에서고급메이커와대중브랜드사이의격차는꽤나컸습니다. 헤이는그틈새를포착해 1순위의아류나하위버전이되지않으면서고유의캐릭터를갖춘대안으로자리매김했고, 때때로 1순위를능가하는대안이되기도합니다. 2순위나 3순위로선택할수있는브랜드와 공간, 경험에 다양성이 생긴다는 것은 곧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며, 헤이는 마치그들이 속한 도시 코펜하겐이 그런 것처럼 행복지수를 높이는 데 일조하는 브랜드라 평해도 지나치지 않죠. 2018년의 마지막 이슈로 소개하는 브랜드 헤이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각자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물건이나 경험이 어떤 것인지 떠올려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출처] 매거진 B(한글판) Magazine B, 매거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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