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자락 어느 유기농 사과농부가 보내온 편지

글 사진 윤 건

8년여 동안 유기농 사과를 재배하며, ‘서울놈’이 농사지으며 살았던 시간들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어떤 것에 대해 안다고, 옳다고 ‘말하는 사람’이었을 제가, 이젠 아는 만큼 옳은 만큼 그저 그것을 ‘사는 사람’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 제 생각에 그걸로 제 농사 생활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서울입니다. 서대문구, 문화촌으로 불리는 동네 홍은2동 산동네였습니다. 지금이야 서울은 아파트와 빌딩에 둘러싸여 자연을 접하려면 특별한 노력을 해야 하지만, 제가 태어난 1960년대 서울 변두리 마을 주변은 온통 푸르렀습니다. 30∼40대를 호구를 해결하며 분주히 사는 동안 물러 터져가는 머리통을 만지며 이렇게 각박한 일상으로 나머지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생각은 조금씩 커져 틈틈이 배운 도법 스님의 말씀, 헬렌 니어링의 글을 자양분으로 시골살이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유기농사가 힘들다는 과일, 특히 사과 농사로 정한 것은 아마도 제가 어려서부터 가지고 있던 약간의 반골 성향, 청개구리 마음이 작용했지 싶습니다. ‘힘들다는데 그걸로 해 보지 뭐….’ 네, 힘들었습니다. 일단 농사를 잘 몰랐고 사과 농사를 몰랐고 무엇보다 농사꾼으로 사는 일상의 삶에 대해 몰랐습니다. 1년에 몇백만 원, 천여만 원 수입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했고, 잔고가 바닥나 농협은행에서 대출하는 법을 배워야 했고, 벌레와 멧돼지 고라니의 피해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더운 계절엔, 어둠 가시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저녁 8시까지 일하고, 어떤 날은 비 오시면 낮 막걸리로 하루를 끝내는 당연한 농부의 일상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8년차 사과농부는 농사와 농부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골살이, 일상에 그렇게 힘든 일만 있으면 살 수가 없겠죠. 겨울에 전지작업을 하고 추위가 가시기 시작하면 사과밭은 봄소식을 전해주기 시작합니다. 밭에서 나는 다양한 나물과 풀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유기농 사과 농사를 지으며 경험하는 큰 기쁨입니다. 제가 살며 사과농사 짓는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지역은 거의 모든 농부들이 사과농사가 주수입원입니다. 모두 관행으로 농사짓는 분들이라 그분들도 나물 나는 철이면 제 밭에 와서 뜯곤 하시죠. 냉이를 시작으로 달래, 민들레, 고들빼기, 쑥, 머위, 취, 참나물 같은 것들은 1년치 제 밥상을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밭 위로 소백산맥 산자락 나무들이 여린 싹을 틔우고 초록이 비칠 즈음 사과나무들도 싹을 내밀고 꽃을 틔웁니다. 도시에선 벚꽃 놀이가 시작될 때 사과농부는 사과꽃 바다에서 사과꽃과 전쟁을 시작합니다. 봉오리와 꽃망울을 따는 ‘적뢰’, 꽃을 속아주는 ‘적화’ 그리고 꽃 지면 작은 열매를 속아내는 ‘적과’…, 일 년 가운데 가장 바쁜 시기가 다가온 겁니다. ‘지나가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라는 말 들어 보셨는지요. 딱 그 심정입니다. 그렇게 정신없는 4월, 5월이 지나고 6월에나 조금씩 여유가 생깁니다. 물론 유기농부는 1년에 네댓 번 풀과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풀 때문에 유기농사 못 짓겠다는 말도 나오긴 한답니다. 그렇게 풀과 나무 속에서 씨름하고, 틈틈이 자연에서 온 천연 유기농 약재로 방제도 하며 뜨거운 여름을 지내고 나서 8월부터 파란 사과 아오리 품종을 수확하기 시작합니다. 이어서 홍로, 료까, 양광을 거쳐 10월 말 부사를 수확하며 한 해 농사를 정리하게 됩니다. 결과물이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수확의 기쁨은 노동의 고단함을 잊게 해 줍니다. 올해 농사를 돌아보고 다음해 더 나은 수확을 기대하며 1년 농사를 정리하게 되죠. 겨울철 전지부터 수확까지 그 모든 과정이 사람의 손으로 이뤄지는 일이니 사과농부에게는 튼튼한 다리와 체력은 기본 가운데 기본입니다. 11월은 부사 수확을 마치고 저장고에 넣어 놓은 뒤라 한 해에서 그나마 여유 있는 시간입니다. 물론 마무리 못한 사과 선별도 해야 하고 이리저리 생협과 소비자에게 판매도 해야 하니 온전히 쉬긴 힘듭니다. 우리가 선택한 개발과 편리함의 결과물로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오염이 우리 인간을 공격합니다. 이미 늦었기에 인간은 그 욕망의 업보를 치러야 한다는 서글픈 마음까지도 들긴 합니다. 그렇지만, 그러함에도, 그렇게 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이제 곧 겨울의 본격 추위가 올 듯합니다. 산자락, 몇십 년 전 지어졌을 작은 집에 사는 저는 또 겨울 날 준비를 해야 하는 계절입니다. 베어낸 사과나무 땔감으로 아궁이에 열심히 불 넣은 방 안에서 나가기 싫어지는 겨울에는 게으름도 살짝 피우게 됩니다. 8년여 동안 유기농 사과를 재배하며, ‘서울놈’이 농사지으며 살았던 시간들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어떤 것에 대해 안다고, 옳다고 ‘말하는 사람’이었을 제가, 이젠 아는 만큼 옳은 만큼 그저 그것을 ‘사는 사람’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 제 생각에 그걸로 제 농사 생활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날이 차서 아궁이에 나무를 조금 더 넣어야 하겠습니다. 당신에게도 작은 구들방의 온기가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윤건 – 서울 은평구 지역신문 <은평시민신문> 창간과 은평두레생협을 만드는 데 함께했다. 경북 영주로 귀농해 유기농사과 농사를 8년째 짓고 있다. 몇몇 지역 두레생협과 직거래시장에서 사과를 맛볼 수 있다.

이 글은 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 264호 특집 ‘사과원에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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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작은 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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