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만난 사람ㅣ"20년 차 래퍼" 타이거 JK


 

헤이, 당신은 정말 행복을 아는가! 

이달에 만난 사람│래퍼 타이거JK 

 

삶은 각자의 선택에 의해 써 나가는 모노드라마다. 끝을 알 수 없는 인생이란 무대 위에서 오늘의 행복을 위해 어제를 부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긍정하는 사람도 있다. 래퍼 타이거JK(44)는 후자의 경우다. 국내 대중음악계에 힙합 문화를 소개한 선구자인 그는 어제의 힘든 시간들이 오늘의 행복을 알게 해주었다고 말한다. 이제야 비로소 자신이 써 내려가고 싶은 인생 모노드라마의 끝을 확신되게 되었기 때문이다. 



20년 차 래퍼의 존재감



오후 느지막이 스튜디오로 출근하는 모습에서 채 가시지 않은 단잠의 여운이 느껴졌다. 트레이드마크인 삐죽삐죽한 턱수염과 덥수룩한 헤어스타일, 무심하게 걸친 단색의 트렌치코트와 허름한 운동복 바지…. 애써 꾸미지 않은 타이거JK의 일상은 대중의 환호를 받는 스타 뮤지션에 대한 선입견을 간단히 배반했다.

그럼에도 그의 등장만으로도 필굿뮤직(FEEL GHOOD MUSIC) 사무실에 금방 화색이 돌았다. 하루 종일 비어 있던 마지막 퍼즐이 제자리를 찾은 듯 사무실 안의 모든 게 아귀가 딱 맞아들어갔다. 피로한 기색을 드러내는 게 민망한지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넘기는 그의 얼굴은 좀처럼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벌써 몇 달째 스튜디오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어 차림새에 신경 쓸 여유가 없어요. 사실 평소대로라면 지금이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에요. 스튜디오만 들어오면 자꾸 욕심이 나서 밤샘 작업을 하게 돼요. 오후 서너 시부터 녹음을 시작해 수정과 재녹음을 반복하다 보면 밤을 꼬박 새고 다음 날 아침 11시나 돼야 잠자리에 들어요. 방해받고 싶지 않아 여기엔 시계 하나 갖다두질 않고 있어요.” 

속사포처럼 빠른 랩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모습과 달리 느릿느릿한 일상의 말투에서 정감이 느껴졌다. 함께 있는 사무실 식구들과도 서로를 꼭 장난기 많은 형제 대하듯 했다. 의정부시 외곽의 아파트상가 지하에 위치한 필굿뮤직은 타이거JK가 가수 겸 래퍼인 아내 윤미래, 래퍼 주노플로, 비지와 인디 무대의 젊은 래퍼들과 함께 꾸려가는 힙합 전문 레이블이다. 필굿뮤직의 대표이기도 한 타이거JK는 사무실과 스튜디오를 겸한 이곳에서 소속 뮤지션들과 함께 노래를 만들고 음반 작업을 하고 있다.

요즘 필굿뮤직 식구들의 관심은 온통 11월 중순 발매될 ‘드렁큰 타이거 10집’ 앨범에 쏠려 있다. 10년 만의 앨범 발매를 눈앞에 앞두고 가장 긴장하는 건 장본인인 타이거JK다. 그에게 이번 정규 앨범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5집까지 함께 활동했던 DJ샤인의 탈퇴 후 홀로 고집스레 팀 이름을 지켜온 그는 이번 앨범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드렁큰 타이거’란 이름을 쓰지 않을 작정이다. 수시로 변화하는 힙합씬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드렁큰 타이거만의 음악적 정체성을 지켜온 그였지만 변화의 시기가 왔음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곡들이 불과 일주일 후면 수명이 다하는 디지털 음악 환경에서 그는 이번 음반에도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고집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번 음반은 드렁큰타이거 초창기부터 힙합을 즐기던 삼사십 대 팬들을 위한 음반이에요. 그들에게 힙합을 처음 듣던 시절의 감수성을 다시 돌려주고 싶어요. 마지막 다섯곡만 마무리하면 되는데 그게 쉽지 않네요. 요즘 계속 밤을 새게 되는 것도 조금이라도 더 완성도 높은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예요.”

조만간 세상에 선보일 10집 앨범은 디지털 음원이 아니라 서른 곡의 노래를 담은 정식 음반으로 발매된다. 손쉽고 저렴한 제작 방식을 거부하고 정식음반을 고집한 바탕에는 스스로 열었던 힙합의 한 시대를 마감한다는 타이거JK의 선언적 의미가 담겨 있다. 어느덧 직장인이 되어 사회생활에 바쁜 드렁큰 타이거의 올드 팬들이 반가워할 생각에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에게선 지난 몇 년간 발목을 잡고 있던 슬픔을 찾기 힘들었다.

만약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어떤 말을 해주셨을지 궁금하기도 해요. 아버지만큼 제 음악을 온전히 이해해주신분도 드물었죠. 의료사고가 의심되는 일로 힘들게 투병하시다 돌아가셔서 더 가슴이 아파요. 견디기 힘든 통증 속에서도 진통제 대신 명상만으로 고통을 이겨내실 만큼 강한 분이셨어요. 아버지 이름에 먹칠하지 않겠다는 오기가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온 건지도 모르지요.”

2014년 폐암으로 작고한 부친 서병후는 대한민국 최초의 빌보드 특파원으로 국내에 본격적인 팝 문화를 뿌리 내리게 한 대중음악평론가, 유력 일간지의 음악담당 기자로 이름을 날렸다. 모친 또한 젊은 시절 ‘와일드 캐츠’ 리더로 활약한 유명 가수였다. 부친 덕분에 타이거JK의 어릴 적 기억 속엔 집에 놀러오던 당대 유명 가수들의 모습이 또렷이 각인돼 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초등학생 때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타이거JK는 LA폭동 이후 재미 한국인을 조롱하는 흑인 래퍼 아이스큐브의 대항마로 유명해졌다. 저돌적인 가사와 거침없는 랩으로 한인 비하를 반박하면서 ‘술 취한 호랑이(드렁큰 타이거)’라는 애칭도 함께 얻었다. 

한 번의 좌절을 딛고 한국에 다시 돌아와 드렁큰 타이거 1집을 발매한 게 1999년이었으니 내년이 그가 정식으로 한국 대중음악계에 출사표를 던진 지 20주년이 되는 해가 된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힙합 시장은 그사이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주류음악으로 성장하며 막대한 부와 인기를 거머쥔 스타 래퍼들을 탄생시켰다. ‘한국 힙합의 레전드’라 불리는 타이거JK 역시 누구보다 큰 환호와 인기를 몰고 다니던 최고의 인기 래퍼였다. 그런 그가 여태 허름한 작업 환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전혀 예상 못한 그림이었다.

“이 정도만 해도 저에겐 부족할 게 없어요. 2014년 필굿뮤직을 시작할 때는 여기보다 좁고 허름한 공간이었어요. 그에 비하면 저나 후배들이 맘놓고 일할 수 있는 지금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하죠. 무엇보다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제 음악만 할 수 있어서 좋아요.”

그 무렵, 타이거JK는 전 소속사와 결별하며 맨 몸으로 필굿뮤직을 차렸다. 공연과 CF 등으로 벌어들인 50억원의 이상의 수익을 회사 설립자인 자기도 몰래 몇몇 직원들의 차명계좌로 빼돌린 걸 발견한 뒤였다. 갚아야 할 빚이 많이 남았다는 매니저들의 말만 믿고 회계장부 한번 살펴보지 않은 그의 불찰도 컸다. 3억 원 넘게 받은 자신의 CF출연료가 3천만 원, 15억 원이 넘는 음반 수익금이 적자를 겨우 면한 것으로 기록돼 있는 회계장부를 보고 현기증이 일었다. 모든 게 거짓 투성이였다. 무엇보다 가족처럼 믿었던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이 그를 힘들게 했다.

 



행복이란 하고 싶은 일은 하는 것


 

 

 

 


 

매니저들한테 매달 100만 원씩만 월급을 받아도 좋겠다고 투덜거릴 정도로 세상을 몰랐어요. 믿고 맡겼던 인감으로 명의를 다 바꾸고 차명계좌 로 돈을 빼간 걸 알고는 얼마나 허탈 하던지…. 아버지와 제 앞에 찾아와 주식으로 다 날렸다며 사정을 하기에 용서해줬는데 시간이 지나니 말과 행 동이 또 바뀌더군요. 그 일을 겪은 후 사람에 대한 상처를 극복하는 게 힘들었어요.” 

뜻밖에도 매니저들의 공금횡령을 용서해주자고 먼저 말을 꺼낸 건 병석에 누워 있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그 와중에도 대중예술인인 아들의 명예와 상심을 걱정했다. 병마와 싸우던 아버지를 보낸 그 해, 타이거JK는 모든 것을 덮어주기로 하고 소속사를 나와 새롭게 출발했다. 이제 그는 소속사 식구들을 돌봐야 하는 회사 대표로서의 일도 직접 챙긴다. 맨 손으로 새로 시작하는 자신을 믿고 함께 따라와준 필굿뮤직 식구들에 대한 책임감도 그만큼 더 커졌다. 

“돈이 없으니 앨범 표지도 우리끼리 만들고, 뮤직비디오도 가내수공업처럼 찍는 열악한 형편이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아요. 그 일들을 겪고 나이가 들면서 느낀 게 있어요. 힘들다고 해서 꼭 불행한 건 아니더라고요. 힘들어도 꿈이 있으면 행복한 사람인 거예요. 언제나 옆에서 함께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남편을 이해해주는 아내를 만난 것도 제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죠. 아내가 저보고 ‘싼 남자’래요. 사소한 일 가지고도 금방 행복해하니까….” 

음악 이외의 것에서 그는 지금도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다. 행사비 10만원만 받아도 아내와 함께 동두천으로 놀러다니던 지난날조차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돈은 없지만 저는 지금이 제일 행복해요. 랩도 그랬어요. 음악이나 글을 배워서 랩을 시작한 게 아니라 좋아서, 단지 그게 너무 즐거워서 시작한 거였어요. 지금도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행복감으로 살고 있어요.” 

회사에서 멀지 않은 의정부 외곽의 낡은 아파트에서 그는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 조단, 아내 윤미래와 함께 장모님을 모시고 느릿느릿 인생을 즐기며 살고 있었다. 누군가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큰일을 겪었으면서도 그는 여전히 세상은 진실한 사람들의 것임을 믿는다고 말했다. 

짧은 인터뷰가 끝나고 다시 그를 작업실로 돌려보내야 할 시간이었다. 며칠 후 있을 호주 공연을 떠나기 전에 마무리할 일들이 있어 오늘도 그는 스튜디오에서 밤을 샐 모양이었다. 

회사 보드판에 그려놓은 아내 윤미래의 캐리커처와 말풍선이 눈길을 끌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에게 아내는 이런 당부의 말을 건네고 있었다. ‘윤미래가 지켜보고 있다. 단디해라!'


글 이종원 편집장 | 사진 최순호

 


[출처]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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