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오후의 그림카페 _ 좋은 사람 / 현현, 일러스트레이터


 

사실 저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합니다. 10년 이상 그림을 그려왔지만 늘 더 잘 그리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믿기 어려울 수 있지만 제가 가진 모든 그림에 관한 기술을 누군가에게 알려준다면, 일주일? 넉넉하게 보름이면 저는 할 말이 바닥나서 몹시 불안할 겁니다.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이 어떻게 화가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자면 저는 잘 그리기보다는 좋은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때 어떤 사람은 노래를 잘해도 듣기 싫은 반면 노래는 못하지만 은근 그의 차례가 기다려지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림도 비슷합니다. 사람들은 사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멋지게 잘 그려졌는가 보다 그림 너머의 이야기를 생각하게 됩니다. 눈과 귀 너머, 결국 마음에 닿고 있다는 말이겠죠. 그것을 저는 좋은 그림이라 고 합니다. 잘 생기고 예쁜 사람이 아닌 좋은 느낌이 드는 사람처럼 말이죠.

모든 아기들은 그림을 좋아하는 화가로 태어납니다. 하지만 학교, 학원을 다니며 옆의 아이와 자신의 그림을 비교하고 소질이 없는 것 같아 흥미를 잃어버립니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한 가지 방법을 잃어버리게 되죠. 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째 줄을 읽을 때 글씨체를 보게 되고 두 줄 세 줄 읽어갈수록 내용에 빠져들게 되죠. 정작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악필로 보일까 부끄러워 편지를 쓰지 못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커가며 계속 표현의 방법을 하나씩 잃어버리게 됩니다.

무엇이든 잘 해내야 한다는 관념이 그렇습니다. 가장 중요하지 않음에도 가장 큰 이유로 우리를 그 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심지어 이미 충분히 잘 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말이죠. 안타깝게도 채워지지 않는 우리의 마음은 늘 봄에 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절대 열매를 얻을 수 없는 계절을 말이죠. 씨앗을 뿌려 아무리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아도 가을이 오기 전에 우린 열매를 얻을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깊은 욕심에 자신의 시간을 투자합니다. 하지만 결국 반대편에 있는 많은 것을 놓치고 가을이 오기도 전에 지쳐서 포기하게 되죠. 그것이 본디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고 말이죠.

조금은 여유롭게 아름답게 바라보는 건 어떨까요. 이는 행복해집시다와 같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비를 좋아 했습니다. 소리도, 향기도, 감촉도 참 좋아했습니다. 뒤늦게 시작한 그림이지만 어린 시절 비를 좋아했던 기억들, 시골학교 운동장에서 보았던 밤하늘에 별들이 지금의 그림이 되어 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저의 그림 너머 그 아이는 누구도 미워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름답게 보길 원하면 아름다워 보이고 그 아름다워 보이는 걸 종이에 적으면 시가 됩니다. 붓으로 그리면 작품이 되겠죠. 제가 알고 있는 좋은 그림을 그리는 방법은 이것뿐이었습니다. 꼭 그림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접해주지 못해도 늘 찾아와주는 계절을 보고, 길가에 손짓하는 작은 꽃들도 한번 바라봐주세요. 불만족을 조금은 내려놓고, 미워하며 시기하며 치열했던 나를 조금은 놓아주세요. 많이 보고 많이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변화지만 반복하면 삶이 될 것입니다. 잘생겨지려는 노력, 잘 해내려는 노력을 놓아주시면 어떠한 일을 해도 포기하지 않게 되고 어려움이 찾아와도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수백 장의 그림을 그리고도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했지만 결국 포기하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좋은 그림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유한 화가가 아닌 좋은 화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잘 못 그리는 화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사랑받는 작가는 그 이유가 있습니다. 사랑받는 사람도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타인의 취향과 표현 방법을 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저는 그런 의미의 예술은 허구라 믿고 있습니다. 예술은, 아버지가 들려주셨던 옛이야기나 어머니가 해주신 콩나물국처럼 또 서랍 속 연인과 주고받았던 풋풋한 편지들처럼 언제 꺼내 봐도 따뜻함이 전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두 돌이켜 보면 좋은 사람들의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차가운 도시에 얼음 방패와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는 건 멋진 것이 아닌,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충분히 좋은 사람입니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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