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人터뷰 _ 별같이 별과 같이 / 천문학자 이명현

 

천문학자 이명현(56)의 문장에는 삶의 길목을 비추는 별들이 알알이 박혀있다. 명멸하는 시간, 찬란한 삶의 순간은 가슴속에 어떤 심상으로 맺힐까. 지난 5월 서울 삼청동에 ‘과학이 문화가 되는’ 과학책방 ‘갈다’(갈릴레오+다윈)를 열고 새로운 별자리를 그려나가고 있는 그를 만나보았다.  “이곳은 원래 제가 고1 때까지 살던 집인데, 대략 2년 전쯤에 장대익 교수와 뭘 할까 얘기하다가 다른 지인들과도 뜻이 모였죠. 정재승, 김상욱 교수처럼 대중적인 글쓰기와 방송을 하는 과학자와 전업 과학저술가, 소설가, 아티스트, 네이버·다음 공동 창업자 등 국내외 110명이 주식회사를 만들었어요. 과학자들은 정의 내리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웃음) 굳이 ‘갈다’의 합의된 정체성을 말하자면, 과학을 계몽의 도구가 아닌 삶의 문화로 생각한다는 거예요. 내용과 형태는 계속 구상하며 논의 중이고요.” 그는 과학과 대중의 커뮤니케이션이 과학의 대중화에서 대중의 과학화로 바뀌었고, 이는 다시 대중의 과학 이해에서 과학의 공공참여(Public engagement in science)로, 최근에는 시민이 직접 조사와 연구에 참여하는 시민과학(Citizen Science)으로 변했다고 부연했다. 그동안 과학과 대중의 간극을 좁혀온 그는 과학이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대중의 참여는 필요하되, 이를 위해서는 먼저 과학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고 했다. 그림을 보는 것과 직접 붓질을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듯, 과학을 여는 첫 번째 열쇠는 수학적 요소와 사고방식이라는 얘기다. “칼 세이건 기획전 다음에 블록체인 강연을 해요. 주로 기술적으로만 접근하는 경향이 있는데, 블록체인은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게 아니거든요. 이것이 형성되는 데에는 히피 문화, 미국 동부•서부의 갈등 문화, 근대 중앙집권에 대한 반발 등 다양한 것들이 얽혀있고, 거기에 투쟁한 사람들이 있었죠. 내년 2월쯤, 게임의 문화사도 다룰 예정이에요. 이런 얘기가 있어요. 철학자 베이컨의 엄마가 되게 극성스러웠는데, 매일 편지로 잔소리를 했대요. 시중에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들이 있다고 하는데, 절대 거기에 가지 말라고. 그게 바로 셰익스피어였죠(웃음). 물론 급진적인 작업들도 있었으니 이해는 가요. 지금 게임이 그렇죠. 죄악시하거나 돈의 개념으로만 보지 말고 문화적 관점에서 다룰 필요가 있어요.” ‘아폴로 키즈’였던 그는 유년 시절 금성에 매혹되어 스스로 도서관에서 과학책을 찾아보고 아마추어 천문가 활동도 하면서 꿈을 키워나갔다. 이후 천문학자가 되어 별과 더욱 가까워졌지만, 거시적인 것들을 연구하면서 미시적인 것들은 보지 못하는 오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한다. “늘 먼 시차적 관점으로 우주를 바라보다가 정작 내게 정말 소중한 이들의 마음은 놓친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혹시 그들이야말로 내 주변의 외계 지적 생명체는 아닐까?”2)와 같은 문장의 행간에는 그런 고민의 흔적이 짙게 배어있다.“과학자들이 일에 너무 몰두하다 보면 자신이 소통하는 세상은 작아져요. 원리 자체에 압도당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상황들은 잊고 시민, 생활인으로서 마땅히 관심 갖고 행해야 할 것들에 소홀해지죠. 아무리 독립적인 사고를 한다고 해도 사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오히려 정치·경제학을 하는 사람들이 현실에 더 관심을 갖고 생활에 밀접해요. 관계를 중심으로 하니까요.” 별을 좇아 걸어온 길에는 늘 문학이 동행했다. 그에게 있어서 글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강렬하면서도 매력적인 표현 수단이다. 그는 학창시절, 윤동주 시인을 비롯해 교과서에 실린 시인들의 전작을 찾아서 읽었고, 수백 편의 시를 외우고 다녔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문학 동인회를 조직해 시낭독회와 시화전을 열었고, 일주일에 두 편의 연극 관람을 잊지 않았을 정도로 열혈 문학청년이었다. 그의 작가에 대한, 글에 대한 존중은 책방 2층에 마련된 ‘작가의 방’에서도 엿볼 수 있다. 독립성과 개방성을 강조해 ‘문 없는 방’으로 설계된 이곳은 방문객과 작가 모두에게 유연한 소통의 공간이 되고 있다. “정신과 의사이신 아버지(이근후 선생)가 병동에서 사이코드라마를 하실 때 극작가 오영진,  이강백 선생님을 뵙게 됐어요. 그때부터 제 뇌리에는 극작가가 전문 직업으로 각인됐고, 천문학자와 극작가가 장래희망이었죠. 학창시절 여러 편의 극작을 하고 연극 연출도 했는데, 생각해보면 부끄러워요. 이오네스코에 영향을 받았는데, 사실 서사적으로 이끌어 가거나 억제할 힘이 약해서 기교와 표현을 앞세운 것들이었죠. 뭐 참신했을 수도 있지만요(웃음).” 요즘 그는 천체사진가로 활동하는 후배들과 함께 네팔, 칠레 등으로 관측 여행을 다니고 있다. 망원경 없이 빈손으로. 어릴 적 처음 인생의 친구이자 영원한 꿈인 별을 본 그대로, 육안을 넘어 심안으로 온전히 바라보기 위해서다. 그동안 만나온 별자리와 별들은 더 이상 재생되지 않을 기억일지라도 각각의 사연이 축적된 그의 역사가 되었다. “별먼지(Stardust)는 레토릭만이 아니라 우주공간에서 물리적·화학적으로 결합된 인간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자각시키는 말이에요. 작지만 시간적 영속성을 지닌 존재라는 중의적 표현이죠. 우주공간에서 우연과 필연은 일상성이 허물어지는 지점이에요. 우연으로 만들어졌지만 이를 지배하는 건 물리법칙이라는 필연이죠. 찰나적·우연적 존재로서 자신을 본다면 주체적일 수 있어요. 개인의 영역에서는 더 자유롭고, 자신이 속한 사회의 규칙에는 엄격해야 하죠.”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칼 세이건이 문학적으로 명명한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아가는 소우주(小宇宙)로서의 우리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돌아갈까? 오늘도 가슴 한편에 별 하나를 품어본다. 그때 그 시절 별 헤는 밤을 헤아리며.

글. 사진 김신영 편집장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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