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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人터뷰] 자신의 자리에서 불빛을 밝히며 / 김유곤, 약사

 
 
“지금 퇴근하시는 거예요? 오늘은 많이 늦어졌네요. 어디가 아프세요?” “무슨 약 찾으시죠? 제가 도와드릴게요.” 경기도 부천시 바른손 약국에 들어서면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안부를 묻고, 약과 함께 따뜻한 위로와 마음을 건네는 김유곤 약사(58)가 있다. 24시간 잠들지 않는 심야약국을 9년째 운영 중인 그는 일명 ‘나홀로 약국’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약사로서의 소명을 다하고 있다. 아파서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을 위해 그 역시 잠 못 이루며 약국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약국이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은 바로 약국이라는 신념으로. 그가 밝힌 의식의 불빛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즉 도덕적 책무의 실천이었다. 그리고 그 작은 실천들은 한 방향, 하나의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2010년 대한약사회에서 각 지역별로 6개월간 시범사업으로 심야약국(레드약국)을 최소 한 곳 이상 운영해 달라는 공문이 왔어요. 다른 지역처럼 부천도 지원자가 없어서 약사회장이 운영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그분의 사정을 듣고 아내와 두 딸과 상의해서 ‘6개월만 해보자’며 시작했죠. 그때 밤에 약을 찾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알게 된 이상 문을 못 닫겠더라고요. 솔직히 저라고 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어요? 하지만 늦은 밤에 강남, 경기도 인근, 인천 등에서도 약을 찾아 오시는데, 그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어서 행복해요. 약국에서 일한다기 보다는 약국 놀이를 한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하고 있어요(웃음).”
그는 자신이 심야약국을 닫을 수 있는 방법은 공공 심야약국의 제도화로 동네 곳곳에 심야약국이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공공 심야약국은 법정공휴일과 일요일을 제외하고 밤 10시에서 새벽 1시까지 운영하는 약국을 지칭한다. 이는 심야에 편의점에서 안전상비의약품을 구입할 시 발생할 수 있는 약물오남용의 부작용을 방지하고, 약사의 전문적인 처방으로 약을 구입하도록 만든 제도이다. 즉, 주민의 건강 및 의약품 취급의 공익성과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지자체의 공공 심야약국 지정과 재정 지원으로 현재 제주, 대구, 경기 일부, 대전에서 시행 중이지만, 사실상 지원 없이는 적자가 생기는 구조적 한계로 선뜻 나서는 약국은 드물다. 현실적인 제반사항과 문제들도 혼재되어 있어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 이에 그는 제도적 기반의 마련도 중요하지만 의식의 전환이 우선시 돼야 한다고 했다. 
“약국은 돈 버는 수단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약사 스스로의 의식 변화가 필요해요. 현실적인 어려움은 피할 수 없지만, 저는 지원과는 별개로 약사로서의 사명감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려고요. 약사는 약의 전문가로서 국가에서 면허증을 받잖아요. 그러니 약이 필요한 그 시간에 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처방해줄 의무가 있죠. 편의점 판매 반대에도 다소 회의적인 것은 현실을 봤기 때문이에요. 당장 해열제가 필요한데 약국이 닫혀있으면 어떻게 하나요?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는 사람들은 약을 살 시간도 없어요.”
그는 노동 강도는 세고 혜택은 못 받는, 소위 사회적 약자들 곁에 있어주는 게 자신의 할 일이라고 하면서 심야약국은 결국 ‘복지’라고 강조했다. 상대적으로 의료혜택에서 소외된 취약계층에도 동등하게 혜택이 돌아간다면 누구나 전문가에게 상담 받고 약을 구입할 수 있는 ‘모두의 편익을 위한 복지정책’의 일환이 되기 때문이다.
“심야약국을 하면서 약사로서의 소명의식이 생겼어요. 크리스천은 궂은일, 힘든 일을 해야 한다는 신앙적인 계기도 있었고요. 좋은 자리만 찾아가고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은 피하려는 기독교의 잘못된 세태에서 그리스도인의 길, 인간의 길은 이것이구나 싶었죠. 원래 꿈은 문과 쪽이었어요. 그런데 학창시절 큰아버지·어머니께서 북에서 오셨다는 이유로 연좌제에 걸려 방황했는데, 친척들이 약대를 권유했죠. 얼떨결에 들어간 약대에서 1학년 때 받은 성적은 겨우 F를 면할 정도였어요(웃음). 다시 1학년을 마치고 신학대학과 약대를 두고 고민하다가 군 입대를 했는데, 거기서 극적으로 약제병으로 차출됐어요. 선택의 기로에서 ‘왜 약대를 가야 했을까’하는 근본적인 질문의 답을 얻고 약학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하게 됐죠.”
그의 인생에서는 3번, 의식이 전환되는 계기가 있었다. 군대에서 약학 공부를 계속할 것을 결심했고, 심야약국을 통해 약사로서의 사명감이 생겼다. 이에 앞서 가장 큰 의식의 전환은 IMF 시절에 있었는데, 남을 돕는 것의 의미가 재정립된 시기였다. 진정한 도움이란 남아서가 아니라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을 포기하고 나눠주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저는 남보다 일찍 골프를 시작했어요. 성실히 벌어서 누리는 전형적인 삶이었죠. 그런데 IMF가 터지고 1년간 매주 노숙자들을 돌보면서 남을 돕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했어요. 100만원 벌어서 99만원 쓰고,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만원으로 돕는 게 과연 옳을까. 골프를 치는데 찔리더라고요. 이 돈이면 남을 더 도울 수 있는데…. 그 뒤로 골프채를 다 팔아버렸어요. 나는 이렇게 누리면서 남을 돕는다는 게 모순이었죠. 돈은 벌어서 혼자 쓰는 게 아니라 흘러가야 해요. 지식도 그래요. 실천과 행함으로 나타나는 지식이 살아있는 지식이죠.”
그는 이웃사랑 선교 통장에 매달 상당 금액을 모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에게 전하고 있다. 대학시절, 일주일에 한 번 금식으로 아낀 밥값을 사랑의 겨자씨 통장에 차곡차곡 쌓았던 습관이 여태껏 이어진 것이다. 주변 약사들에게도 작은 실천의 중요성을 알리며 통장에 매주 천 원씩이라도 모을 것을 권유했다. 연말에는 그것들을 십시일반 모아 폐지 줍는 노인 등 불우이웃을 돕는 데 쓰고 있다. 이러한 선행에도 자신은 많은 학식을 소유한 사람도 많은 재물을 소유한 부자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지만, 누군가를 도울 수 있어서 기쁘다고 했다. 
흔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약사가 사라지는 직업군에 속한다고들 전망한다. 그 역시 약국이 단순히 약을 사고파는 상행위의 공간으로, 또 약사는 조제하는 직능에만 머문다면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 간과한 것이 있다며 말을 덧붙였다. 바로 ‘사람’이다. 약국, 특히 동네약국은 지역의 사랑방으로서 약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사람 중심’의 공간이며 약사는 건강에 관한 모든 것을 상담해주는 약의 전문가이자 헬퍼라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그 길이 내 길이라면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꽤 오랜 시간 진행된 인터뷰의 문을 닫으며 그가 남긴 말이다. 그 말처럼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낸 사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깊이와 넓이를 더해가며 언젠가 무르익어 완성되어 간다는 것은.
글·사진 김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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